[다산칼럼]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하도 엄청난 일들이 끊이지 않았던 탓일까, 한 해를 돌아보기조차 불편하다. 2014년의 키워드는 교수신문이 선정한 ‘지록위마(指鹿爲馬)’보다는 차라리 ‘목불인견(目不忍見)’이 맞을 것 같다. 주요 일간신문이 정리한 10대 뉴스도 기쁜 일보다는 흉사, 차마 눈 뜨고 못 볼 일들이 더 많았다. 바닥이라면, 더 이상 나쁠 수 없다면 그래도 앞으론 나아지지 않을까 근거 없는 낙관도 가능하지만, 사실 더 나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다.

모든 것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여기던 시절엔 늘 과감한 포부와 설계로 새해를 맞이할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얻은, 결국 앞일이 그렇게 뜻대로 이뤄지지 않더라는 추체험은 그때 그 시절의 무모한 낙관주의를 한낱 추억으로 만든다. 그런 때문인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마음은 늘 착잡하다. 그렇게 많은 일, 참사를 겪고 씻을 수 없는 자괴감에 사로잡혀서 추스를 수 있는 희망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위대한 새해를 그리기보다는 제발, 부디 새해에는 더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앞선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지만 다시 또 그런 말로 눈앞에 벌어진 일, 재앙과 고통을 얼버무릴 수는 없지 않은가. 정말 내일, 새해에는 내일의 해가 뜨는 것일까.

올 한 해 우리가 겪은 고난과 아픔은 대부분 너와 나, 우리가 저지른 잘못 때문이었다. 불가항력의 재난도 없지 않았지만 우리 그리고 누군가가 제대로 책임을 다하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피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의 원인이 구조적이어서 어쩌다 한두 번은 모면할 수 있을지라도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일인 경우도 많았다. 그런 경우에도 누구든 그 화근이 되지 않으려고 아니 화근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했다면 막을 수 있는 일도 많았다. 결국 다시 사람이 문제다.

새해에도, 아니 그 다음 새해에도 우리는 거듭 사람이 문제고 사람이 답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는 왜 일어났는가. 수많은 젊은이가 학교에서 병영에서 죽고 다쳐야 했던 까닭은 무엇인가. 에볼라 재앙은 어떻고 이슬람국가의 대량 학살은 또 어떠했는가. 거듭된 인사 참사, 관피아 스캔들, 전·현직 공직자들의 성추행, 십상시·문고리 권력의 국정농단 논란 등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추문 시리즈를 이어가며 정부가 사고를 친 희한한 일도 결국 사람 때문이었다.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장구한 역사 속에서도 인간성 변화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도 아주 조금만이라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자. 다만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만 바뀐다면 그게 바로 희망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그리고 자신에게 평소 조금만 더 잘해 보자고 말해야 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맡은 일은 어김없이 책임지겠다는 다짐이 필요하다.

작은 변화에 앞장 설 사람들은 누구보다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 휘두르는 권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세상이 대통령이 정점인 피라미드 구조도 아니고 또 매사 그를 들먹이는 것도 잘못이지만 누구보다 대통령이 먼저 바뀌면 좋겠다. 일거수일투족이 사회 전체에 막대한 파급효과를 미치기 때문이다. 곧 신년 기자회견도 연다고 하니 이번에는 좀 더 허심탄회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보통사람들과, 각료들과, 언론과 쌍방향으로 소통하고 반성하며 우리가 겪는 어려움의 원인과 해법을 함께 찾아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그리고 정부, 기업 등 사회 모든 부문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 갑의 지위를 누려온 사람들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 겸허히 을의 처지를 역지사지해서 조금씩만이라도 바뀌어 나가기를 바란다.

더할 나위 없었다고 말할 만큼 위대한 한 해까지 바라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 한 걸음만이라도 모두가 다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위대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구성원, 동시대인 누구라도 그 위대한 첫걸음에 동참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흐뭇하게 살아가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장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