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행복을 주는 예술
2014년 마지막 날 칼럼의 대미를 장식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 유난히 우울하고 힘들고, 때로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사건·사고가 많은 한 해였다. 경제마저 어려워 대다수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 것 같다. 이런 시점에 발레를 업으로 하는 예술인으로서 우리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나는 1980년 중반 프로발레단에 입단해 ‘개인 공간(personal space)’이라는 말을 처음 배웠다. 생소한 단어라 뜻도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히 공간적 의미뿐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발레 공연의 꽃인 ‘군무’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관객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주역의 연기력도 돋보이지만 많은 관객은 작품 전체의 균형을 잡고 질을 높여주는 군무, 앙상블을 오래 기억한다.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협동, 단결, 서로에 대한 배려, 절도의 극치를 눈앞에서 볼 수 있는 매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발레를 처음 시작할 때 무용수들은 유연성, 근력을 키우는 것과 동시에 줄 맞추기, 방향 전환, 속도 조절 등 동료들과 동작을 맞추는 기초훈련을 한다. 한 치의 흔들림 없는 장면 연출을 위해 숱한 연습으로 어려움을 견뎌야 한다. 이 과정에는 조화를 위해 홀로 돋보이기보다 무용수 간 물리적, 심리적 개인 공간을 배려하는 것이 포함돼 있다. 겉보기에는 부드럽고 우아하지만 발레는 그야말로 외유내강의 결정체다. 아름다운 장면 뒤의 보이지 않는 매력을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 또한 예술이 가진 장점이다.

예술의 궁극적인 목표는 ‘힐링과 행복’이다. 소리와 몸짓을 매개로 관객과 교감하고 아픈 영혼을 치유해 마음을 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요즘 같은 현실에는 사람들에게 더욱 문화예술적인 치유가 필요하다. 일반인 사이에서도 발레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 동호회 활동이 늘고 있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며 분노와 스트레스가 쌓여 건강을 해치는 것을 미리 예방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좋은 시기다. 이제는 예술가 개인이나 단체의 성패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 예술과 친해지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새해에는 저마다 좋아하는 예술활동을 새로운 취미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김인희 < 서울발레시어터 단장 aram5868@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