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을미년 경제, 親기업정서 회복에 달렸다
내일이면 을미년 청양(靑羊)의 해가 밝는다. 청색은 빠르고 진취적 성향을 띠며, 양은 온순하나 순발력이 좋고 언덕을 잘 오르는 동물이다. 내년의 경제 항로는 만만치 않겠지만 모두가 지혜를 모아 힘을 합한다면 청양의 순발력으로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올 한 해 한국 경제는 내수침체와 저성장에 시달렸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3.5%로, 당초 목표성장률이자 잠재성장률인 3.8% 수준을 밑돌았다. 세월호 참사가 지리멸렬한 정쟁으로 이어지고 세계적 경제침체 상황에서 통화전쟁이 벌어진 때문이었다. 그래도 지난 2년간 무역흑자가 지속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다.

해외 예측기관들은 새해 한국 경제가 3.5% 정도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정부는 3% 후반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원유가격 급락의 직격탄을 맞은 러시아와 이것이 신흥국에 미칠 파장, 앞으로 더욱 약화될 엔화를 감안해서 종전의 성장예상치를 다시 하향조정한 것이다. 하지만 세계경제를 끌고 가는 미국이 11년 만에 처음으로 올 3분기 5%의 고성장을 기록하는 등 미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전망치를 한 차례 재조정해야 할 요인이다.

이런 전망을 한국의 시각으로 보면 내용이 조금 달라진다. 중국과 한국은 같은 신흥국에 속하지만 다른 신흥국에 비해서는 차이가 많다. 무역흑자를 견지하고 있으며, 산업기술에서는 한국이 신흥국 최상위를 유지하고 있다. 유가 급락과 같은 해외충격도 신흥국에 따라 다르게 영향을 준다. 한국은 연간 10억배럴의 원유를 수입하고 있어 원유가격이 배럴당 10달러 떨어지면 연간 100억달러(약 11조원)가 절약된다. 석유, 가스 수출국인 러시아와 중동 산유국의 소득감소로 이 지역에 대한 한국의 수출이 다소 줄어들 것이나 적어도 몇 년간은 지금의 저유가 추세에서 순이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저유가의 과실을 따려면 기업의 투자마인드가 살아나야 하고 친(親)기업정서도 회복돼야 한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경착륙을 염려하던 중국은 최근 저금리 정책으로 전환했다. 이것도 한국엔 양날의 칼이다. 저금리 정책으로 중국 산업이 경쟁력을 갖게 되면 한국은 글로벌시장에서 그만큼 힘들어진다. 그러나 중국 경제가 연착륙에 성공하면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이 늘어나 한국 경제도 큰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경제회복과 함께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한국의 자본유출이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옳은 것만은 아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비중은 32% 정도다. 이들은 단기금리차보다 해당기업의 실적을 예상하고 투자한다. 투자자들이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미국채권에 투자하면 신흥국 채권가격은 하락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인상 효과는 이미 많이 반영됐기 때문에 자본유출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미국 경제의 회복은 한국의 수출촉진과 투자증대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화 약세는 한국 경제에 위협이 된다. 그러나 엔화 약세 역시 한계가 있다. 일본의 수출산업이 경쟁력을 얻어 단기 고용효과는 있겠지만 엔화의 구매력 하락으로 교역조건이 계속 나빠지면 일반 노동자와 소비자들이 큰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신흥국이 자본시장 완전개방 압력을 받으면서 경제 강국의 양적 완화와 종료에 따라 환율 널뛰기를 감내해야 하는 국제통화제도는 개선돼야 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은 이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우선 유로-달러-위안-엔화 간 환율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해당 정상들이 합의하고 또 그렇게 하도록 신흥국들이 공동으로 요구해야 한다. 내년 한국 경제가 순항하기를 염원한다.

김인철 < 성균관대 명예교수·경제학 ickim@skk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