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수출국 '환율 악몽' 끝나지 않았다
국제유가 등 원자재값 하락과 달러 강세가 내년 주요 원자재 수출국 경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것은 외환시장이다. 러시아 칠레 등 신흥국은 물론 노르웨이 호주 캐나다 등 선진국도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운명을 맞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원자재값 하락에 따른 통화위기에 각국 중앙은행이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으면서 내년에도 주요 ‘원자재 통화(commodity currency)’가 안갯속을 헤맬 것”이라고 30일 보도했다.

서유럽 최대 산유국인 노르웨이는 올 들어 통화가치가 미 달러화 대비 19% 하락했다. 선진국 화폐 중 가장 큰 낙폭이다. 유로화에 대한 노르웨이 크로네 가치는 2009년 중반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주요 원자재 수출국인 캐나다와 호주의 화폐 가치는 올 들어 미 달러화 대비 각각 8.5%, 9.3% 하락했고 뉴질랜드달러는 5.8% 떨어졌다. 원자재 수출로 나라 살림을 꾸려온 신흥국은 더 큰 타격을 입었다. 서방 국가의 제재와 유가 하락이 맞물린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올 들어 달러 대비 41% 급락했다. 칠레 페소화는 14%, 브라질 헤알화는 11% 떨어졌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가치도 9% 하락했다.

화폐 가치 하락을 겪고 있는 각국 중앙은행은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고 있다.

호주는 중국의 철광석 수요 급감 등으로 수출이 부진한 상황에서 호주달러 약세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며 반기고 있다. 글렌 스티븐스 호주 중앙은행(RBA) 총재는 호주달러 가치가 지금보다 더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달 초 기준금리를 16개월째 연 2.5%로 동결했다.

노르웨이는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연 1.25%로 0.25%포인트 인하했다. 2년9개월 만의 깜짝 인하였다. 북해 유전 투자 위축, 유가 하락, 주요 수출지역인 유럽 성장 둔화로 하락하고 있는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대응이었다. 반면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 방어를 위해 16일 기준금리를 연 10.5%에서 연 17.0%로 6.5%포인트 전격 인상했다. 1조루블 규모의 채권을 발행해 자본 부족에 처한 민간은행 지원에도 나섰다.

피터 킨셀라 코메르츠뱅크 외환전략가는 “내년 원자재 수출국 통화가 안정적인 랠리를 펼치길 기대하는 것은 꿈 같은 일”이라며 “이들 화폐의 투자가치를 저울질하는 건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호에서 좌석을 재배열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경기에 따라 원자재 수출국의 운명이 갈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캐나다달러는 올해보다 낙폭이 줄겠지만 중국 의존도가 높은 호주달러는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FT는 강달러 행진이 이어지면서 내년에 미 달러 등을 빌려 원자재 수출국 통화에 투자하는 ‘캐리 트레이드’는 쪼그라들 것으로 전망했다. 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나라의 통화로 자금을 조달해 금리가 높은 국가의 금융상품 등에 투자하는 것으로 환전 비용을 제외하고 이자 수익을 챙길 수 있는 투자법이다.

■ 원자재 통화

commodity currency. 원유와 철광석, 금, 구리 등 원자재 가격 변동에 민감한 통화를 일컫는 용어다. 원자재 수출이 경제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프리카공화국, 노르웨이, 러시아 등의 통화가 이에 속한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