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련기술 1개로 10년, 20년 먹고사는 시대 끝나
대기업·中企 모두 살아남으려면 생각 틀 깨는 혁신을
한국, 일본처럼 안되려면 창의적 기업가 키워라
세계 최대 회계·경영컨설팅 업체인 PwC(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의 데니스 낼리 글로벌네트워크 회장(62)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기업가 정신이야말로 저성장 시대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몰락 위기에 처했던 미국 제조업체들이 셰일혁명 외에 원가절감, 생산 효율화 등 혁신을 통해서 되살아나고 있다”며 “한국 기업들도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혁신해야 글로벌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그룹이 한화그룹에 방위산업·화학사업을 넘긴 ‘빅딜’과 관련해선 “경쟁이 격화되고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기업들의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낼리 회장은 세계 157개국에서 19만여명의 회계사 등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는 PwC의 수장이다. 2009년 선임돼 5년째 조직을 이끌고 있다. 한국 내 기업 환경을 점검하기 위해 한국 네트워크 법인인 삼일회계법인을 방문한 낼리 회장을 지난 29일 서울 한강로 삼일회계법인 본사에서 만났다.
▷내년 세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내년 세계 경제는 3~3.25%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럽은 내년에도 저성장을 탈피하기 어려울 전망입니다. 러시아 경기는 후퇴하고 있고 브라질도 경기 후퇴기에 근접했어요. 중국 성장률은 7~7.5%로 예전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문제들이 좀 더 복잡하게 얽히면 생각하지 못했던 환경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한국은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한국의 성장률은 3~3.5% 정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세계 경제 성장률과 비슷하거나 높을 거예요. 얼마 전까지 높은 성장률을 경험한 한국으로서는 불만스러울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 국가의 성장률을 볼 때는 글로벌 경제 환경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합니다. 현재 대부분 국가들이 성장 폭이 작거나 마이너스 성장하는 환경에서 3.5% 수준의 성장은 나쁘지 않습니다.”
▷일본식 장기침체를 걱정하는데, 세계 경제보다 좋은 성적표를 낼 수 있을까요.
“결국엔 기업이 해결해야 합니다. 혁신과 창의성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것 외에 방법이 없습니다. 세계적인 제품 경쟁력과 서비스를 창출해야 한다는 말이죠. 사실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놀라울 만큼 잘해 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소비자의 요구와 기대 수준은 높고 경쟁은 심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혁신과 창의성은 구체적으로 뭔가요.
“PwC를 예로 들어보지요. PwC는 구글과 사업협력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계약으로 내년 7월 중 PwC 사내 네트워크를 구글 애플리케이션으로 옮겨 갈 예정입니다. 구글이 상품을 개발할 땐 PwC가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양사는 시장에 제공할 수 있는 신상품과 서비스를 공동 개발할 계획입니다. 나의 것만을 고집하지 않는 이런 시도는 기존 시스템과 다른 것이죠. 헬스케어를 예로 들면, 전통적인 의료서비스는 병원에 입원하는 방식이었다면 요즘엔 새로운 기술혁신으로 (원격진료 등) 다양하고 폭넓은 의료서비스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한다는 건 쉽지 않은데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인류 역사 자체가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한 과정이지요.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존이나 애플 등은 ‘창조적 공유(creative sharing)’를 중요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파트너십을 맺거나 네트워크를 형성해 필요한 부분에서 기술과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죠. 글로벌 기업 중 상당수는 연관 산업 내에서 다른 업체들과 제품을 공동 개발하는 것은 물론 고객과 시설을 공유하면서 새 사업의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혁신은 위험을 동반하는데, 안정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요.
“흐르는 강에서는 열심히 수영하지 않으면 떠내려갑니다. 생각의 틀을 깨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혁신해야 한다는 것은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독일 회사들이 높은 제품의 질을 유지하고 있는 건 끊임없이 혁신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제조업체들도 5~8년 전 몰락할 것이란 얘기가 있었지만 지금 다시 살아나고 있어요. 일을 하는 혁신적인 방법, 원가를 절감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려 노력한 결과입니다. 이제 기업들에 혁신과 창의성은 ‘하면 좋은 것(nice to have)’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것(must have)’입니다.”
▷혁신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뭔가요.
“최고경영자(CEO)의 의지이지요. 저성장 시대인 지금 필요한 기업가 정신이란 바로 CEO가 생각의 틀을 깨는 것입니다. 그래야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혁신적인 기업가를 키우는 것이야말로 경제를 발전시키는 동력을 확보하는 길입니다. 한국이 고도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혁신적인 기업가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CEO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요.
“물론입니다. CEO가 모든 방면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CEO는 그런 혁신적인 생각을 끌어낼 환경을 만들어주고, 또 실천할 힘이 돼야 하는 거죠. 얼마 전 만난 유럽 기업의 한 CEO는 지속적으로 임원들을 실리콘밸리로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임원들은 3개월에 한 번씩 본사로 돌아와 직원들과 느낀 점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안될 텐데요.
“그래서 혁신을 기업 문화로 정착시키지 않으면 안됩니다.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직원들에게 보상하는 체계가 필요한 것이지요. 글로벌 기업 CEO들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재능 있는 직원을 발굴하는 데 고민이 많습니다. 혁신적인 CEO라면 사람에 투자하는 것을 가장 중시할 겁니다. 직원 개개인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숙련된 기술 하나만으로 15~20년 동안 살아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어요.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고 자신의 능력을 재창조하기 위한 끊임없는 자기계발이 필요합니다.”
▷한국에선 삼성그룹과 한화그룹 간 대형 인수합병(M&A)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평가합니까.
“구조조정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고, 또 그래야 합니다. 글로벌 경쟁이 점차 심화되고 기술 변화는 빨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선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사업의 방향성은 적정한지 등을 계속 살펴보고 그것에 맞게 환경을 고쳐나가는 게 기업이 해야 할 일입니다. 어떤 기업은 성장을 선택할 것이고 어떤 기업은 수익성을 선택할 겁니다. 그래서 사업을 사고파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는 거죠.”
데니스 낼리 회장은…
1974년 PwC 미국법인의 디트로이트사무소에 입사한 이후 40년째 PwC에서 근무하고 있다. 전 세계 157개국 PwC 네트워크 법인을 총괄하는 PwC 인터내셔널 회장으로 2009년 7월 취임했다.
낼리 회장은 취임 당시 16만3000여명이던 글로벌 네트워크 소속 전문가들을 현재 19만여명으로 20%가량 확충하는 등 PwC 성장을 이끌어왔다. PwC는 2013회계연도(2013년 7월~2014년 6월)에 340억달러의 글로벌 매출을 올렸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이 선정하는 글로벌 500대 기업 중 417곳이 PwC의 고객사다.
낼리 회장은 회계법인 업무 중 컴퓨터 생명과학 등 신기술 기업 감사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2년생으로 웨스턴미시간대에서 회계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골프와 요트여행이 취미다.
글=하수정 기자/사진=정동헌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