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부문 당선자 홍준성 씨는 자타공인 책벌레다. 군 시절부터 3년 동안 400권 넘는 책을 읽은 그는 2년 연속(2012, 2013) 네이버 독서 분야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이력도 갖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장편소설 부문 당선자 홍준성 씨는 자타공인 책벌레다. 군 시절부터 3년 동안 400권 넘는 책을 읽은 그는 2년 연속(2012, 2013) 네이버 독서 분야 파워블로거로 선정된 이력도 갖고 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1991년생입니다. 부산대 철학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자 홍준성 씨(24)에게 당선 사실을 통보하며 나이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스물넷 양띠, 신문사가 주최하는 신춘문예 당선자 중 매우 어린 축이다. 고 최인호, 황석영 등 당대 작가 중 10대에 당선된 이들도 있지만 20대 초반의 청년이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것은 뜻밖이다.

홍씨는 소설가 지망생이 아니었다. 그저 철학이 좋아 열심히 공부하던 모범생이었다. 그는 “세상을 바꾸는 공부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선택한 학문이 철학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다 그의 생각을 바꾼 일이 생겼다. 교내 문학상 응모를 준비하던 선배를 돕다 소설에 흥미가 생긴 것. 단편은 그의 이야기를 풀어내기엔 모자랐다. 한경 청년신춘문예에서 장편소설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자 곧바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당선작《열등의 계보》는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격동의 시기를 살았던 김녕 김씨 충무공파 3대(代)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들은 힘든 현실을 벗어나려 몸부림치지만 운명은 그들이 순탄한 삶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살아낼 수 있는가’란 주제의식이 작품을 관통한다.

그는 군 시절부터 3년 동안 400권이 넘는 책을 읽으며 블로그에 독후감을 남겼다. “3년 전부터 책을 계속 읽은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딱 이 작품을 써야겠다고 주제를 잡았던 것이 아니라 그동안 쌓였던 지식들이 폭발한 기분이었어요. 인간의 삶과 의지라는 주제는 모든 시대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홍씨는 작품을 이틀 동안 구상해 단 보름 만에 완성했다. 빠르게 작품을 쓴 데에는 그간의 독서 경험과 자료 조사를 맡은 후배의 도움이 있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알베르 카뮈를 꼽았다. “카뮈의 인생을 좋아합니다. 식민지 출신으로 소설도 쓰고 철학서도 내고 글로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더군요. 사실 철학 이야기는 재미있는데도 딱딱하다는 이유로 인기가 없는데 철학을 소설로 풀면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는 상금을 받으면 20년이 넘도록 차 없이 지낸 어머니에게 작은 차를 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작품을 쓰는 데 도움을 준 이들에게도 사례한 뒤 남은 돈은 소설의 재료가 될 취재 활동에 쓰겠다는 생각이다. 1년 정도 휴학하며 다른 이야기를 풀어낼 생각도 하고 있다. 아직 젊디젊은 대학생이기에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청년 작가다. “직업을 목표로 하지 않고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할 겁니다. 저는 철학을 하고 싶기 때문에 그 큰 단어 아래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장편소설 당선작 ‘열등의 계보’ 줄거리
4代에 걸쳐 찾아 헤맨 인간된 삶의 참의미


한경 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열등의 계보》는 4대에 걸친 김녕 김씨 충무공파의 이야기를 그렸다.

계보의 시작은 증조(曾祖) 김무(金無)다. 그는 일제강점기 김녕 바닥에서 농사를 짓던 소작농으로 자신이 김녕 김씨 충무공파라는 사실을 유일한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저 장가나 한번 멋들어지게 가고 싶은 꿈을 꾸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집안에선 김무에게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하와이에서 돈을 벌어다 주기를 원한다. 게다가 김녕 김씨의 조상신들까지 꿈에 나타나서 닦달해 김무는 하는 수 없이 고향 땅을 떠나 부산항에서 막노동, 경마, 사기, 인질극 등 온갖 난리를 치고 하와이로 떠난다.

한편 하와이에서 태어난 김무의 아들이자 조부(祖父) 성진은 조국이 해방됐다는 소식에 아버지의 친구 염씨와 함께 귀국한다. 담배장사로 인생길이 좀 트이는 듯했으나, 정치깡패인 유 계장의 담배장사와 맞물리며 망치고 만다. 졸지에 거지꼴이 된 성진은 유 계장에 대한 복수를 다짐했지만 갑자기 터진 6·25전쟁으로 그의 인생은 포화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가 1970년대로 접어들고, 이때 계보의 3대인 부친(父親) 철호가 물만골 판자촌에서 태어난다. 상이군인으로 다리를 쩔뚝이는 아비는 집을 나가고 가난과 사채 빚으로 술집을 전전하던 어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일하던 공장에서 임금까지 떼인 철호는 악에 받쳐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용역깡패 두한을 찾아가고, 그때부터 쇠망치를 들고 철거촌을 누비며 더 어두운 곳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야기의 말미는 4대인 유진에서 마무리된다. 비명횡사한 아비의 유골함 앞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던 유진에게 어느 날 우연처럼 30여년 전 집을 나갔던 조부 성진이 나타나고, 유진은 그의 입을 통해서 김가네의 3대가 걸어온 지난날의 이야기를 모두 듣게 된다. 이후 의미심장한 꿈을 꾸고 일어난 유진은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장편소설을 쓴다. 과연 우리는 이 모든 이야기 속 하나의 질문인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사는가?”에 무슨 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 당선 통보를 받고…
“내 人生 첫 소설…첫 독자인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처음부터 소설을 쓰려 했던 것은 아니었고, 넓은 의미로 정의된 철학이 좋아 여러 책을 섭렵하며 3년을 보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중순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빅뱅처럼 터져버렸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사는가”라는 인간 된 삶의 근본을 물어보는 질문이 전 시대를 걸쳐서 보편성을 지닌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네들이 그 속에서 어떤 군상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야기 전체는 이틀 만에 모든 구상이 다 끝났고, 남은 15일 동안은 이 이틀 동안 본 것을 그저 적어 내려가기 바빴다. 거의 처음 쓰는 소설이었는데, 깨달은 점은 하루에 원고지를 100장씩 적으면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게 된다는 것과 타자를 치는 손가락이 굉장히 아프다는 것이었다. 특히 후자는 숟가락을 잡을 때 고통스럽다는 점에서 매우 치명적이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 없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내 첫 독자가 돼 이런저런 평을 해준 어머니에게 감사하고, 늘 믿고 지지해준 아버지에게도 감사드린다. 역시나 무작정 읽어보라는 요구에 응해준 부산대 철학과 후배들에게 고맙고, 특히 내 광기를 믿고 따라와 준 후배 찬휘는 자료 조사한다고 고생했다. 또한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인간이 갑자기 나타나 제대로 된 인사는 고사하고 다짜고짜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교정 작업을 좀 해달라고 원고를 들이밀었을 때, 이 어이없는 요구를 흔쾌히 수락해준 김경연 부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끝으로 ‘날것’임에도 기꺼이 그 가능성을 봐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 감사하며, 앞으로 그 시선이 정확했음을 증명해 보이도록 하겠다.

■ 홍준성 씨는

△ 1991년 부산 출생 △ 부산대 철학과 2학년

■ 심사평
독자를 끌고가는 이야기의 힘 … 수상의 영광 갈랐다


장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박성원(왼쪽부터), 정유정, 정영문 소설가.
장편소설 부문 심사위원 박성원(왼쪽부터), 정유정, 정영문 소설가.
작가는 세상에 할 말이 있어 글을 쓰는 종족이다. 할 말이 떨어진 작가는 무대에서 내려와야 하고,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작가는 무대에 오를 수도 없다. 그런 면에서 두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하나는 투고작 전반에서 느껴지는 훈련 부족 증상이다. 문법과 맞춤법 오류, 인터넷 용어 남발 등 기본이 돼 있지 않은 작품이 많았다. 이래서는 제아무리 멋진 이야기를 품고 있어도 독자를 설득하기 어렵다. 아름다운 묘사, 기발한 표현, 독창적인 문체에 앞서 ‘정확한 문장’ 연마가 필요하다. 정확한 문장은 작가를 신뢰하게 한다.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적다는 점도 아쉬웠다. 그나마도 대부분 로맨스 장르였다.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연애 외에 다른 할 얘기가 없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다른 얘깃거리는 과거에서 소환된 것이 많았다. 본심에 오른 세 편 역시 1920~1930년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최종심에서 수상작 선정을 놓고 끝까지 고민한 작품은《육혈포에 묻다》《울며 그림을 그리다》《열등의 계보》다. 공교롭게도 세 작품 모두 전체가 혹은 부분적으로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의열단 김상옥 의사의 종로경찰서 폭파 사건을 소재로 한《육혈포에 묻다》와 독립군의 종군화가라는 색다른 인물을 내세운《울며 그림을 그리다》는 이야기의 전개가 자연스럽고, 문체가 안정적이며, 소설 속 사건들에 대한 조사를 깊이 하고, 심지어는 무대가 됐던 곳에 대해 답사까지 한 듯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졌다. 특히《울며 그림을 그리다》는 수상작으로 선정해도 하등 손색이 없었지만, 다른 작품을 선정하게 돼 못내 안타까웠다.

당선작인《열등의 계보》는 일제 강점기에서 전후 한국과 1980년대, 1990년대를 지나 현재까지 망라하는 이야기의 힘이 가장 센 작품이었다. 독자를 끌고 가서 기어코 끝을 보게 만드는 완력, 사건과 인물을 제어하는 통제력은 작가가 자기 작품의 형식을 완벽하게 장악하는 데서 나오는 미덕이다. 세 인물이 끌어가는 각각의 이야기는 스스로 완결된 구조를 가지면서도 ‘삶은 과연 개인의 자유의지로 이뤄지는가’라는 극적 질문으로 단단하게 연결된다. ‘이야기가 이야기되는 시공간’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 쿡쿡 웃게 하는 입담도 인상적이었다. 문체가 다소 불안정하고, 부분적으로 장황한 곳들이 있었지만 장편소설에 어울리는 힘 있는 서사와 높은 흡인력이 돋보였고, 그 점을 높이 사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수상자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보내며 건필을 기원한다. 정영문·박성원·정유정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