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반성문부터 챙겨야 할 금융당국
“업권 간 칸막이를 없애는 등 2단계 규제 개혁을 단행하고 핀테크산업을 육성하겠다.”(신제윤 금융위원장, 12월30일 금융혁신회의)

“내년 금융시장이 역동성을 갖출 수 있도록 자율과 창의를 존중하겠다.”(진웅섭 금융감독원장, 12월29일 송년 기자간담회)

금융당국 수장들이 을미년 새해를 앞두고 던진 화두다. 수익성 악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금융회사들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뜻이다. 고심 끝에 내놓은 구상일 것이다. 하지만 왠지 결연한 의지라기보다 의례적인 새해 덕담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앞선다. 지난 한 해 금융권이 입은 상처가 큰 상황에서 절절한 반성 없이 새 출발만 외치고 있어서다.

실제 그랬다. 작년 1월 국민·농협·롯데 등 3개 신용카드회사에서 1억여건의 회원정보가 유출되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다. 금융회사의 허술한 개인정보 관리 실태와 금융당국의 무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금융그룹 내 1·2인자인 지주 회장과 은행장의 동반 퇴진을 불러온 이른바 ‘KB사태’는 후진적인 한국 금융의 ‘민낯’을 드러냈다. 낙하산 최고경영자(CEO)와 권력화한 사외이사들의 진흙탕 싸움도 볼썽사나웠다. ‘중징계→경징계→중징계→직무정지’로 널뛴 금융당국의 제재는 사태에 기름을 부었다.

은행연합회 우리은행 대우증권 등에서 CEO를 선출할 때마다 ‘내정설’과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에 대한 소문이 들끓었다. 금융당국은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인사 파행을 자초했다는 비판을 비껴가기 힘들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정책을 쏟아내며 시장 혼란을 부추긴 사례도 많았다. 우리은행 민영화 과정에 정부는 여론의 눈치를 살피다 입장을 제대로 세우지 못해 혼선을 불렀다. 결국 민영화는 실패했다.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은 여론의 질타를 받고 ‘땜질식’ 처방에만 급급했다.

그렇게 한 해가 끝났다. 그리고 아무도 말이 없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금융당국은 새해 화려한 정책과 수사를 앞세우기 전에 먼저 반성문을 쓰고 되새겨야 한다. 또 사건·사고에 파묻힌 한 해를 보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장창민 금융부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