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새 달력을 걸면서
달력은 곧, 권력이기도 했다. 중국 왕들이 나라를 세우면 저마다 ‘정확한 달력’을 반포하려 애썼다. 천문기상과 농사의 기준을 세우는 것부터가 제왕의 권위를 높이는 일이었다. 연호를 새로 만드는 것처럼 역법을 정비하는 것이 권력을 탄탄하게 하는 방편이기도 했다. 그러니 왕조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달력이 나오고, 심지어 같은 왕조에서 역법이 바뀌는 일까지 있었다.

서양에서는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BC 100~44)가 만든 율리우스력을 1000년 이상 사용했다. 그러나 오차가 갈수록 커져 1582년 그레고리우스력으로 대체했다. 이것이 몇 세기 동안 전파 과정을 거쳐 지금 우리가 쓰는 세계 공통의 달력으로 자리잡게 됐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중국 역법을 수입해 달력을 만들었다. 세종 때 중국 역법의 약점을 보완한 칠정산법을 따로 만들기도 했지만 조선 후기 청나라 시헌력법을 들여왔고, 고종 때인 1896년 서양의 그레고리 역법으로 바꿨다.

왕은 매년 새 달력을 신하들에게 나눠줬다. 양반 가문 외에는 달력을 받기 어려워서 서민들은 이를 필사해 썼다. 달력이 가장 필요한 농민에게 달력은 보물과도 같았다. 요즘은 국가관청인 한국천문연구원이 천문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담은 ‘역서’를 매년 11월 중순에 발행하면 달력 만드는 사람들이 이를 바탕으로 인쇄한다. 한 달 단위로 달의 이름 아래 요일별 날짜를 배열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름도 달력이다.

한때 유명 화가의 그림이 담긴 달력을 얻으려고 화랑가를 기웃거리던 시절도 있었다. 1960년대는 문희, 남정임, 윤정희 트로이카로 도배한 달력이 인기였다. 시골에선 국회의원이 나눠준 근하신년 달력으로 농가나 식당 벽을 발랐다. 맥주와 소주 회사가 나눠주는 비키니 달력은 금세 동이 났다.

해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새 달력을 거는 순간의 잔잔한 떨림은 특별하다. 새해 아침에 새 꿈을 다짐하는 것은 옛 시간을 비우고 새 시간을 채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산 정약용은 귀양살이 중에도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교양 있는 사람은 새해를 맞으면서 반드시 그 마음가짐이나 행동을 새롭게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다산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보통의 우리들도 새해 달력을 걸면서 괜스레 마음이 설렌다. 부디 좋은 일이 많았으면 하고 잠깐이나마 마음을 가다듬어 보자. 천자칼럼 독자 여러분께서도.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