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오는 6일 개막하는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에 전시된 편지그림.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에서 오는 6일 개막하는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에 전시된 편지그림.
한국의 대표화가 이중섭 화백(1916~1956)은 6·25전쟁으로 아내와 자녀를 일본으로 보낸 뒤 쓸쓸함과 외로움에 편지를 쓰곤 했다. 가족에게 보낸 편지그림에는 ‘아빠는 닷새간 감기에 걸려 누워 있었다. 열심히 그린 그림을 팔아 돈과 선물을 잔뜩 사갈 테니 건강하게 기다리고 있어 주세요’라는 글이 그림과 함께 적혀 있다. 다른 글에선 자신의 일본인 아내(한국명 이남덕)를 부르며 ‘하루라도 빨리 함께 살고 싶소…. 세상에 나만큼 자신의 아내를 광적으로 그리워하는 남자가 또 있겠소’라고 고백했다. 절절한 가족 사랑이 넘쳐난다.

이 화백의 가족 사랑과 그리움을 담은 편지화를 비롯해 담뱃갑 은박지에 그린 그림(은지화), 유화, 드로잉·채색화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된다. 서울 사간동 갤러리 현대가 개관 45주년을 맞아 오는 6일부터 내달 22일까지 열리는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이다.

새해를 맞아 ‘신(新)가족주의’를 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전시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된 은지화 3점이 60년 만에 처음 공개되고, 가족에게 보낸 미공개 편지그림 20여점도 함께 소개된다. 영화 ‘국제시장’을 계기로 뜨고 있는 ‘가족애’가 화단에도 불고 있는 것.

이 화백은 서민들의 전통적인 가족 일상에서 예술을 뽑아낸다. 색채는 다소 어두운 편이지만 그 속에는 가족적인 미감이 살아 움직인다. 이른바 ‘가족애의 미학’이다. 가족의 일상 이야기에 서정적인 이미지를 접목한 그림들은 단아하고 깊은 맛을 낸다.

1955년 주한미국대사관 문정관이었던 아서 맥타가트가 이중섭의 개인전에서 구입한 은지화 3점은 대가의 진솔하고 애뜻한 가장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목 타는 세상일 속에서도 그나마 그를 지탱해준 건 바로 가족이란 생각에 두 아들의 뛰노는 모습을 활달하게 담아냈다. 맥타가트는 60년전 서울에서 열린 이중섭 개인전에 대한 전시평을 쓰기도 했다. 그때 은지화 3점을 구입해 MoMA에 보냈다는 게 갤러리 현대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중섭은 오산학교 시절부터 이미지가 떠오를 때 담뱃갑 속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은박지를 편 후 연필이나 철필 끝으로 눌러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수채나 유채를 칠한 것인데, 이것이 마르기 전 헝겊 또는 손바닥으로 닦아내면 그 선에 물감이 스며들어 묘한 미감을 자아낸다. 말년에 가난 때문에 헤어져야 했던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화도 이 화백의 예술세계만큼이나 극적이었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은지화와 편지그림 이외에 삶과 사랑, 가족애를 담은 1954년작 유화 ‘길 떠나는 가족’ ‘가족’ ‘닭과 가족’도 볼거리다. 연극 제목으로 사용돼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길 떠나는 가족’은 부인과 두 아이를 일본에 보내고 난 뒤 가족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따뜻한 남쪽 지역으로 이사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끈끈한 가족 사랑과 행복의 은유적인 맛이 한꺼번에 느껴진다.

1972년 이어 두 번째 이중섭 전시회를 기획한 박명자 갤러리 현대 회장은 “일본에서 그의 아내 이남덕 여사의 일생을 담은 기록영화가 제작돼 지난달 13일부터 일본 전역에 상영되고 있다”며 “이 영화를 짧게 편집해 전시장에서도 선보인다. 또 제주 생가를 전시장에 재현했다”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유홍준과 최석태 씨는 전시 기간 중 이중섭 특별강연을 진행할 예정이다. 관람료 어른 5000원, 학생 3000원. (02)2287-35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