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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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대제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회장(63)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다. 국비 1호 유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갔다가 “일본을 이기겠다”는 야심을 품고 귀국, 16메가 D램을 일본보다 먼저 개발해 후발주자인 삼성전자를 반도체 부문에서 세계 최고로 만들었다. 삼성전자 사장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변신하더니, 이젠 1조4000억원 규모의 사모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그는 “나이는 환갑을 넘겼지만 내 삶에서 변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며 웃었다.

지난달 26일 서울 도곡동 이탈리아 음식점인 ‘언노운 다이너’에서 만난 진 회장의 첫인상은 ‘젊다’는 것이었다. 늘 새로운 것을 찾기 때문이냐는 질문에 그는 “익숙한 것이 좋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 식당만 해도 떡만둣국을 팔다가 이탈리아 음식점으로 바뀌었지만, 음식이 달라졌어도 10년 가까이 드나들고 있다. 변화와 도전을 즐기는 진 회장이 10년 가까이 한 집을 단골로 삼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바쁜 사람만이 휴식의 참맛을 즐길 줄 안다’는 말이 문득 생각났다.

[한경과 맛있는 만남]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회장 "세상 바꿔 보겠다는 욕심, 내 삶 변화시키는 원동력…벤처에 혁신 DNA 심을 것"
◆깡촌에서 태어난 수재

진 회장은 1952년 경남 의령군 부림면의 산간벽촌에서 태어났다. 만주를 떠돌던 양친은 광복 후 의령에 정착해 농사를 지었다. “헐벗고 굶주리는 게 익숙했던 시기”였다. 10명의 형제 중 4명만이 살아남았다. 그중 막내가 진 회장이다. 네 살 때 대구로 이사한 진 회장 가족은 부친이 가발 공장, 막걸리 공장을 전전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모친은 식모살이를 했다.

진 회장은 형제 중 두드러지게 명석했다. “명문으로 꼽히던 경북중학교에서 언제나 1, 2등을 다퉜다”고 말했다. 하지만 큰형이 사기에 휘말리며 집안 살림이 어려워졌을 때 전혀 다른 길을 갈 뻔했다. 그는 “아버지가 공고에 가라고 하는데, 왜 나는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참 속이 상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서울의 큰누나가 불러줘서 경기고를 다닐 수 있었다.

진 회장의 가정사가 이어지는 동안 이탈리아식 샐러드인 훈제 채끝 인살라타와 바질페스토 스파게티가 나왔다. 인살라타는 채끝 등심 훈제구이에 송이버섯으로 만든 샐러드로 이 집의 인기 메뉴 중 하나다. 바질페스토 스파게티는 조미료 없이 바질(허브의 일종), 스파게티 면, 치즈, 오일 등 네 가지 재료만 써서 만든다. 언노운 다이너에서 직접 키우는 바질 향과 치즈 맛이 절묘하게 어울렸다.

언노운 다이너는 2009년 이전엔 전통찻집이었다. 당시 점심에만 떡만둣국을 팔았는데, 사모펀드 대표인 진 회장과 직원들은 ‘싸고 맛있다’는 이유로 거의 매일 찾았다. 덕분에 회사 직원들이 구내식당처럼 애용하게 됐고 이탈리아 음식을 파는 언노운 다이너로 바뀐 뒤에도 단골집이 됐다.

◆반도체에 눈뜬 수학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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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 입학시험을 마치자마자 고등미적분학 등 수학 서적과 물리학 책을 보고 캘리포니아공대, 버클리공대에서 출간한 외국 수학 문제집을 사서 풀곤 했다”며 “그야말로 수학과 물리학이 너무 좋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다른 수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국민윤리 시험에서 ‘유교가 근대화에 미친 영향’을 묻는 문제에 ‘6·25가 근대화에 미친 영향’을 쓰고 D를 받기도 했다.

대학 2학년 때 우연히 수강했던 ‘물성전자’라는 과목은 그를 반도체로 이끈 계기가 됐다. 당시 반도체 초기 개념에 대해 공부하던 학문이었다. 국비 1호 유학생으로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스탠퍼드공대에서 각각 석사, 박사학위를 따며 반도체 전문가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언노운 다이너의 대표 음식인 오리 가슴살 스테이크가 나왔다. 버섯 리소토와 함께 나오는 오리 가슴살은 국내 오리 농가를 돌며 직접 구입한 오리를 잡은 것이다. 피가 살짝 비칠 정도로 익힌 오리 가슴살의 부드러운 식감이 송로버섯의 은근한 솔 향기와 잘 어울렸다.

◆6년 만에 지킨 약속

1985년 10월 초 진 회장은 당시 미국 최고의 이공계 두뇌집단이라는 IBM 왓슨 연구소를 박차고 나왔다. 그러곤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직을 만류하던 스탠퍼드대 은사에게 “일본을 이기겠다(I am going to swallow Japan)”는 말을 남긴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일본이 256K D램을 개발,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 반도체 강국으로 군림하던 때였고, 한국은 갓 반도체 산업을 시작한 반도체 후진국이었다.

그는 “1987년 9월 갑자기 삼성전자 경기 기흥 반도체공장에 달려온 이병철 당시 회장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암투병 중이던 이 회장의 손엔 ‘한국 반도체는 일본을 베낀 것’이라는 기사가 실린 신문이 들려 있었다. 이 회장은 당시 이윤우 공장장(현 삼성전자 상임고문)과 진대제 연구팀장 등을 모아놓고 “화가 나지만 이 기사 말대로 우리는 지금까지 일본을 베꼈다”며 “영국의 증기기관이 세계를 제패하듯, 훗날 한국 반도체가 세계를 제패하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역설했다. 이 공장장과 진 팀장은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이 회장은 이틀 후 응급실에 실려갔고 두 달 후 작고했다. 삼성전자가 1993년 메모리반도체 부문 세계 1위로 올라서기까지 이 회장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는 그는 “신문을 들고 두눈을 부릅뜬 채 왜 일본보다 못해야 하냐고 화내시던 이 회장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척박한 땅이 내가 있을 곳”

진 회장은 메모리반도체를 세계 1위에 올린 공로로 1995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당시 그는 1000억원대 적자에 시달리며 삼성전자 내에서 열등생 취급을 받던 마이크로(비메모리) 사업부를 맡아보겠다고 자원했다. 그는 “남들이 못하는 것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었는데 제가 좌천됐다는 소문이 돌았죠”라며 웃었다. 진 회장은 C등급을 받던 사업부를 1997년 A등급으로 끌어올렸고, 1999년에는 1000억원대 흑자 사업부로 탈바꿈시켰다.

마이크로 사업부를 궤도에 올려놓은 그는 2000년에 다시 취약 분야로 꼽히던 정보가전사업부 사장으로 옮겼다. 트레이드 마크로 꼽히는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취임식에 나타난 것이 화제가 됐다. “패배의식에 사로잡혔던 직원들에게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싶었어요.” 그는 취임 2년 후인 2002년엔 “3년 안에 소니를 따라잡겠다”고 공언했다. “주변에서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죠. 그때 삼성전자가 소니를 이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진 회장의 말대로 삼성전자는 3년 후인 2005년 브랜드파워에서 처음으로 글로벌 가전 강자 소니를 제쳤다.

2003년 2월 진 회장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정보통신부 장관에 취임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최장수 장관을 지내며 정통부의 위상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대통령 업무 보고를 처음으로 파워포인트로 진행하고, 직원들에게 업무를 할당한 뒤 점수와 인센티브를 주는 ‘CEO 미션제’를 실시하는 등 민간 기업의 업무 방식을 도입해 공직사회의 변화를 주도했다.

◆“세상을 바꾸자”

갓 구운 피자가 식탁 위에 올라왔다. 이탈리아 최상급 햄인 프로슈토 산다니엘레에 채소의 일종인 아르굴라와 루콜라를 푸짐하게 얹은 프로슈토 디파르마 피자다. “담백한 이탈리아 남부 피자 맛을 제대로 살렸다”고 그는 평가했다.

진 회장은 투자 업무 외에 별도로 ‘진대제 최고경영자과정’이라는 중소기업 대상 교육 과정을 만들어 지금까지 500여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일을 꼽자면 우리 중소기업들에 교육을 통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능력이나 기술도 중요하지만 중소기업과 신생 벤처기업에 가장 필요한 건 기업가 정신입니다. 과거 이병철 회장이나 정주영 회장, 박태준 회장처럼 세상을 바꾸겠다는 야심이 있어야 해요.” 그는 “요새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기대 돈을 버는 식의 반짝 틈새 아이디어를 찾을 게 아니라 기술과 연구를 토대로 글로벌 시장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 정부는 창업 지원도 필요하지만 기존 중소기업을 육성해 고용을 창출하고 혁신시켜 히든챔피언(글로벌 강소기업)으로 키우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고 역설했다.

스카이레이크는 IT 전문 사모펀드 운용사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는 진대제 회장이 2006년 설립한 사모펀드(PEF) 운용사다.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와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진 회장의 경험을 토대로 주로 정보기술(IT) 분야 중소·중견기업에 투자한다. 미국 IT 전문 투자기업인 실버레이크를 벤치마킹 모델로 삼았다. 스카이레이크(하늘연못)라는 이름은 백두산 천지에서 따왔다. 지난해 말 기준 운용자산(누적 기준)은 총 1조4000억원 규모다. 1년 전보다 5000억원가량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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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대제 회장의 단골집 언노운 다이너
직접 키운 채소로 요리하는 정통 이탈리아 음식점


[한경과 맛있는 만남]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회장 "세상 바꿔 보겠다는 욕심, 내 삶 변화시키는 원동력…벤처에 혁신 DNA 심을 것"
서울 도곡동 대치중학교 맞은편에 있는 양식당이다. 이탈리아 전통 요리와 퓨전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다. 2000년 초 4인조 DJ그룹인 언노운 디제이스 멤버로 활약했던 김휘수 대표가 2009년 어머니의 한식 카페를 물려받으면서 지금과 같은 레스토랑을 만들었다. 김 대표가 판교에 있는 4600㎡ 규모 농장에서 직접 키운 신선한 채소들을 요리에 사용한다.

이탈리아산 햄을 듬뿍 얹은 아르굴라 피자(2만5000원)와 오리 가슴살을 가볍게 익힌 오리가슴살 스테이크(3만4000원)가 대표적인 메뉴다. 빵, 수프, 파스타, 커피 등으로 구성된 점심 파스타 세트 메뉴(1만8000원)도 인기가 많다. 단체 손님의 경우 미리 예약하면 원하는 음식이 나오는 맞춤형 코스 요리를 선택할 수 있다. 주변 직장인에게 ‘맛집’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식당 이름(숨겨진 음식점)과 달리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전 11시30분부터 밤 12시까지 영업한다. 쉬는 날은 설날과 추석 당일뿐이다. (02)573-6672

고경봉/좌동욱/이유정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