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개인의 전문성과 경영 능력을 제쳐놓은 채 출신 직역별로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하다는 식의 논의를 펼치는 것은 정답이 아닐 뿐만 아니라 소모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문성 도덕성 혁신성 등을 두루 따져 해당 기관이 필요로 하는 인물을 개방적이고 공정한 잣대로 선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공공기관 최고경영자(CEO)를 충원하는 △관료 △공공기관 내부 △민간기업 △정치권 등 4개 경로에 대한 강점과 약점, 기회와 위협 요인을 ‘SWOT’ 방식으로 분석해봤다. ○관료 출신… 전문성 높지만 현직과 유착 가능성
공공기관은 정부가 위탁한 국가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민간에 맡기면 도저히 수익을 맞출 수 없는 공공사업들도 한다. 이 때문에 정책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전문성, 공공성과 수익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일정 수준의 경영 능력을 필요로 한다. 관료 출신들은 이런 부분에 강점을 갖고 있다.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대표적인 관료 출신 CEO다. 옛 상공부 미주통상과장, 통상산업부 산업정책국장, 산업자원부 무역투자실장과 차관보 등 33년간 공직생활을 마친 뒤 무역보험공사 사장(2007~2008년)과 KOTRA(2008~2011년) 사장을 지냈다.
나쁘게 보면 ‘전관예우’를 톡톡히 누리는 것으로 말할 수도 있지만, 그가 거쳐간 기관들의 임직원들은 능력과 전문성 측면에서 대체로 좋은 점수를 주고 있다. 조 사장만큼 호평받는 관료 출신 CEO는 제법 많다.
하지만 말 그대로 현직 후배 관료들의 힘, 민간업체들에 대한 영향력을 활용해 이 자리, 저 자리 전전하며 잇속만 챙기는 ‘관피아’도 적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해양수산부 퇴직 관료들과 한국선박·해운조합 간 유착 사례가 대표적이다. 고시 기수를 기준으로 선후배들이 똘똘 뭉쳐 서로 밀어주는 관행도 국민적 지탄을 받았다.
○내부 출신… 업무연속성 최고 … 비리 연루 잇달아
공공기관 내부 승진자는 업무 연속성과 조직 화합이 강점이다. 최근 내부 출신으로 사장에 오른 인물은 장주옥 한국동서발전 사장, 조인국 한국서부발전 사장, 장석효 한국가스공사 사장, 조계륭 전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이다.
장주옥 사장은 직원들의 야근 현장을 찾아 스스럼없이 소통하고, 경영계획을 전 직원과 공유하는 투명 경영으로 조직 화합을 다지고 있어 호평받는다. 조인국 사장도 핵심 역량을 키우기 위해 발전사 중 처음으로 엔지니어링실을 신설하는 혁신을 선보였다.
한 곳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는 데 따른 ‘덫’도 있다. 부패와 비리다. 장석효 사장의 경우 2013년 공사 창립 30년 만에 처음으로 탄생한 내부 출신 CEO인 만큼 안팎의 기대가 컸다. 하지만 그는 협력업체로, 자신이 대표를 지낸 통영예선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말 불구속 기소됐다.
내부 승진한 조계륭 전 사장도 비슷한 시기에 구속됐다. 2011년 6월 사장으로 취임한 뒤 가전업체 모뉴엘로부터 수출신용보증 등의 업무와 관련해 편의를 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수천만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다. 지난해 9월 항소심 법원에서 징역 5년에 벌금과 추징금을 선고받은 김종신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도 내부 출신이었다.
○민간 출신… 혁신 강점, 對정부 관계는 물음표
외부에서 수혈된 전문경영인들은 민간의 경영 노하우를 공공기관에 전수하면서 업무를 혁신적으로, 강력히 추진할 수 있다는 게 경쟁력이다.
삼성정밀유리 부사장 출신인 장도수 전 한국남동발전 사장은 원가·현장·프로세스 혁신을 3대 경영축으로 삼아 2008년 취임 당시 1395억원에 달한 적자를 2010년 3511억원 흑자로 돌려놓는 수완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굼뜨고 방만한 공기업의 체질을 성과 위주의 경쟁체제로 개선해 영업이익률 9.3%를 달성했다.
반면 한전의 민간 경영자 영입 실험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이다. 김쌍수 전 LG전자 부회장(2008~2011년), 김중겸 전 현대건설 사장(2011~2012년)이 사령탑을 맡아 나름 의욕을 갖고 품질 혁신 등을 추진했지만 내부 임직원의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주무 부처와의 불협화음도 적지 않았다.
공공기관의 낮은 연봉 수준은 민간의 역량 있는 경영자 영입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2013년 304개 공공기관장의 평균 연봉은 민간 기업의 임원 연봉 수준인 1억6300만원에 불과했다.
○정치권 출신… 대외관계 좋지만 전문성 떨어져
정치인 출신의 최대 약점은 업무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2013년 취임한 김성회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은 새누리당 의원을 지냈다. 의원 시절에 산업통상자원부를 담당한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을 지낸 이력이 전부다. ‘친박(박근혜)’계로부터 사장 자리를 약속받았다는 소문이 나돈 이유다.
하지만 지난해 그가 달성한 경영 실적은 예상외였다. 지역난방공사는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공공기관 정상화 중간평가에서 방만경영 개선 대상 20개 기관 중 1위를 차지했다. 부족한 전문성은 정치권 출신 특유의 원활한 대외관계로 보완했다.
이에 비해 지난해 11월 강원랜드 새 사장에 선임된 함승희 전 의원의 능력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검사 출신인 그는 2000년 16대 총선을 통해 새천년민주당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가 2007년 ‘박근혜 캠프’에 합류한 이력을 갖고 있다.
여느 ‘정치권 낙하산’처럼 총선철이 되면 몸담고 있던 공기업을 떠나 선거판으로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그를 지켜보는 시각이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