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사들이 1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휴면카드에서 불법으로 수십억원의 연회비를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년간 1460여만장의 휴면카드를 해지하면서 미리 받아놓은 연회비를 제대로 돌려주지 않는 방법으로다. 휴면카드는 아직도 950여만장이 남아있다.
'잠자는 카드'서 연회비 수십억 꿀꺽한 카드사
○최대 1개월간 연회비 더 받아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용카드사들은 휴면카드 통지 일정을 일부러 늦추는 방법으로 연회비를 규정보다 더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카드 표준약관에서는 카드사가 1년 동안 사용 실적이 없는 카드에 대해서는 회원에게 한 달 이내에 알려주도록 하고 있다. 카드를 계속 사용할지, 해지할지 의사를 묻는 절차다. 카드사들은 이 과정에서 1년을 계산할 때 해당 날짜부터 적용하지 않았다. 그달의 가장 마지막 날부터 한 달 안에 통지하는 ‘꼼수’를 사용했다. 해지 의사를 늦게 확인할수록 연회비를 더 받을 수 있어서다.

예를 들어 정상적인 절차일 경우 이번달 5일이 미사용 1년째 되는 날이라면 다음달 5일 안에 휴면카드가 됐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통보 기준일을 임의로 이달 31일까지 늦춘 다음, 여기에서 한 달째 되는 시점인 3월1일 정도에 통보해 준다. 이를 통해 최대 한 달 가까이 연회비를 더 받을 수 있다.

삼성카드 회원 박모씨(35)는 “통장 정리를 하던 중 연회비가 환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콜센터에 알아보니 이같이 처리하고 있었다”며 “무심코 지나쳤다가 손해 볼 뻔했다”고 말했다.

카드사들은 금융당국이 2012년 10월 휴면카드 강제 해지 대책을 시행한 이후 줄곧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휴면카드는 2012년 9월 말 2420만장에서 작년 9월 말 952만장으로 줄었다. 신용카드 한 장당 연회비가 6500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40억원에서 최대 79억원의 이익을 챙긴 것으로 추정된다.

○“휴면카드도 연회비 내야 하나”

카드사들은 휴면카드가 됐다는 사실을 늦게 통보하면서, 휴면카드라도 연회비가 빠져나간다는 사실은 안내해주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휴면카드가 되면 연회비를 내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휴면카드가 자동해지될 때까지는 보통 5개월이 걸린다. 카드사들은 휴면카드가 되면 한 달 안에 통보해주고 1개월을 기다린 뒤 사용 정지시킨다. 사용 정지 이후 3개월이 지나면 계약이 자동으로 해지되는데 연회비는 이때까지 계속 빠져나간다.

물론 불법은 아니다. 여신전문금융업법(시행령 6조의11)에서 ‘연회비 반환금액은 카드회원이 카드사와 계약을 해지한 날부터 하루 단위로 계산해서 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여전법의 반환규정은 정상적인 계약해지에 적용되는 조항일 뿐 휴면카드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카드를 이용하면서 아무런 혜택도 받아가지 못하는 회원에게 정상 회원 수준의 연회비를 받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박종서/이지훈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