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비크조선소에서 부산 영도조선소에선 건조할 수 없는 1만TEU급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만들고 있다. 한경DB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비크조선소에서 부산 영도조선소에선 건조할 수 없는 1만TEU급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만들고 있다. 한경DB
중국의 거센 추격으로 조선 강국 입지가 흔들리는 가운데 한진중공업이 필리핀 수비크조선소에서 옛 명성을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1937년 국내 최초의 조선사로 출발한 이 회사는 1990년대 이후 현대중공업에 밀리면서 급속히 경쟁력을 잃었다.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해외 조선소 설립을 모색하게 된 배경이다. 무엇보다 넓은 도크를 건설할 수 있는 부지가 필요했다.

수비크조선소, 한진重 도약 신호탄 쏘다
때마침 한진중공업 건설부문이 진출한 필리핀 수비크에서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부산 영도조선소보다 규모가 11배나 큰 부지(304만1322㎡)를 월 임대료 1000만원에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2006년 한진중공업그룹이 출범한 직후 조 회장은 수비크조선소 착공을 최우선적으로 결정했다.

수비크조선소는 2009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이후 수주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0억달러를 넘어섰다. 이익 규모도 3000만달러로 5년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 업황 부진으로 국내 조선사들이 실적 악화를 면치 못하는 데 반해 수비크조선소는 중국 조선사와의 가격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황 부진 속 5년 연속 흑자 행진

4일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아직 실적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수비크조선소의 작년 매출이 10억달러를 넘을 것”이라며 “2013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300억원 안팎의 흑자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수비크조선소, 한진重 도약 신호탄 쏘다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서북쪽으로 110㎞ 떨어진 수비크조선소는 부지 면적이 영도조선소보다 11배가량 넓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축구장 9배 크기의 도크가 있다. 안진규 수비크조선소 법인장(사장)은 “이곳에선 영도조선소에서 꿈도 못 꿨을 1만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한 개)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가 가능하고 덕분에 지금까지 1만1000TEU급 5척을 수주했다”며 “선박 대형화 추세에 맞는 작업환경 덕분에 수주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 회장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던 적재용량 30만t짜리 초대형 유조선(VLCC)도 올해부터 건조를 시작한다. 이 역시 영도조선소에선 건조할 수 없는 규모다. 안 사장은 “수비크조선소에서 건조작업이 진행 중인 20척의 선박을 포함해 3년치 일감인 39척의 수주 잔량이 있다”며 “수주가 지속되고 있어 올해 2000명의 직원을 추가 고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비크조선소에선 2만5000명의 근로자가 근무하고 있다.

○원가 경쟁력 앞세워 수주 강화

수비크조선소에 대한 조 회장의 애정은 각별하다. “수비크조선소가 한진중공업의 미래”라는 말을 자주 한다고 회사 관계자는 전했다.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경영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있지만 한 해 3~4번 현장을 찾는다.

회사 고위 관계자는 “최근 중국 조선사들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글로벌 수주를 확대하고 있지만 수비크조선소는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선박을 건조할 때 부품, 자재값이 7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인건비다. 인건비를 낮춰야 원가 부담을 덜 수 있는 구조다. 회사 측은 5억달러짜리 6000TEU급 컨테이너선을 영도조선소에서 건조할 경우 1000억원의 인건비가 발생한다고 했다. 하지만 수비크조선소에선 인건비가 170억원에 불과하다. 영도조선소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6000만원 정도지만 수비크는 20분의 1 수준인 360만원이기 때문이다.

안 사장은 “이곳 근로자들은 숙련도가 낮아 생산성이 영도조선소의 30% 수준”이라며 “영도에서 한 사람이 할 일을 세 명이 해야 하지만 그래도 인건비가 6분의 1에 그친다”고 말했다. 낮은 인건비만큼 입찰가를 낮출 수 있어 수주 경쟁력을 갖게 된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필리핀 정부는 법인세를 7년 동안 면제해줬다.

이 회사 정철상 상무는 “수비크조선소에서 선박을 건조할 때 부품은 대부분 부산 경남 등의 협력사에서 가져온다”며 “수비크가 성공하면 그만큼 국내 협력사들의 일감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올해 수비크조선소 매출이 역대 최대인 12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