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정의와 평화가 깃드는 사회
지난해에는 유독 가슴 아픈 사건 사고가 많았다. 경제도 좋지 않아 사람들의 삶도 더 팍팍해졌다는 목소리다. 그러나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붙들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지금 우리의 과제는 과거의 아픔과 고통을 교훈 삼아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선별하고 희망을 안고 출발하는 것이다.

일련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 희망찬 새해를 보낼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누가 그런 한 해를 보장해줄 수 있을까. 개인인가 국가인가. 우리는 결국 영원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국가와 개인 간의 문제에 다시 봉착하게 된다.

국가는 국리민복(國利民福)이나 국태민안(國泰民安)으로 표현되는 추상적인 목적을 가질 뿐이다. 국가란 가치관, 인생관, 습관 등이 저마다 다른 수많은 개인들이 살아가는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는 공동의 목적을 가질 수 없고 가져서도 안 된다. 구체적인 목적을 가진 기업, 병원, 학교와 같이 국가를 경영의 대상으로 인식하면, 그것은 이미 전체주의 사회로 들어가는 문지방을 넘어선 것이다. 구체적인 목적은 오직 개인이나 동일한 목적을 추구하는 집단만이 가질 수 있다.

개인의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대규모 인간 사회가 돌아가는 이치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즉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몇몇 사람들의 소망대로 계획하고 설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믿음이 있어야 한다.

모든 개인들이 준수해야 할 준칙을 지키면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 때 형성되는 질서가 자생적 사회질서다. 그런 사회질서는 일견 불안해 보이지만, 그 안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고 사회에는 정의와 평화가 깃든다. 그래서 국가의 역할은 사회질서를 보존하는 데 필수적인 사람들의 행동을 규율하는 범주에 국한돼야 한다. 자유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학자들이 끊임없이 강조해 온 ‘작은 정부론’이다.

자생적 사회질서에서는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을 항구적으로 속이거나 수탈할 수 없다. 서로의 기대를 어긋나게 하고 질서를 파괴하는 부정부패도 싹틀 여지가 없다. 오만과 편견이 들어설 공간도 없다. 그런 사회질서를 정의로운 질서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상(理想)과 자생적 사회질서에서 나타나는 결과 간의 괴리는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한계를 나타낼 뿐이다.

인간 세상이 가진 한계로부터 야기되는 것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회 문제는 국가의 개입에서 연유한다. 사회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기구는 국가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의, 효율, 평등이라는 명분 아래 자생적 사회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끝없이 쏟아내는 국가 정책과 규제로 정의로운 사회질서는 왜곡되고 의도한 바와는 정반대로 사회에는 불의, 비효율, 불평등이 가득하게 된다.

인간 세상의 한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진화와 함께 그 영역을 점진적으로 줄일 수 있을 뿐, 정부 정책이나 규제로 교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 세상이 벗어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비효율과 혼동하는 것이 ‘열반오류(nirvana fallacy)’인데, 이는 인간 세상은 본디 불완전하다는 뜻이다. 자생적 사회질서를 바꿔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제3의 길은 애시당초 존재하지 않는 길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양 체제의 충돌로 말미암아 작동할 수 없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의 지적(知的) 깨달음이 세상의 흐름을 크게 바꿀 수 있다. 인류 지성사는 그런 역사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최근 친시장적 경제개혁에 나서고 있는 프랑스도 그런 모습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국가 통제로 숨 막혀 있을 때 한국이 문자 그대로 자유 시장경제를 실천한다면 새해에는 분명 우리가 소망하는 바에 아주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자유 시장경제가 개인들의 삶을 윤택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 정의와 평화를 구현한다는 사실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멀리멀리 퍼져 나가기 바란다. 경제 살리기의 골든타임이 되기를 희망한다.

김영용 <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