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액자산가 김병조(가명·54) 씨는 지난해 말 일부 정기예금을 해약하고 주가연계증권(ELS)으로 갈아탔다. 시중금리가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더 이상 이자 수익으로는 돈을 불리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면서 직접투자의 초점을 국내에서 중국으로 틀었다.

그의 올해 목표수익률은 4~5%로 지난해(8%)의 반토막 수준이다.

"올해는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국내 증시도 지지부진한 박스권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시장 상황이 안 좋으니 새해의 투자목표도 '저금리만 피하자'는 수준으로 낮아졌죠. 금리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 중국, 저유가 등 대체 투자를 찾고 있습니다."

강남부자들 "국내주식 끝났다"…새해 투자키워드는 '중국·저유가'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보유 자산 5억원 이상 고액자산가들의 새해 투자전략 키워드는 '보수적 운용'과 '대체 투자'다.

저금리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목표수익률은 낮췄지만, 기존 투자처보다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대체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들의 설명이다.

◆ 국내 주식투자 비중↓·원금보장 상품 관심

강남·서초·잠실지점의 증권사 PB들은 '고액자산가들이 예전보다 공격적인 투자를 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목표수익률은 지난해 8~15%에서 올해 5~8%로 낮아졌다.

강희정 신한PWM 서초센터 팀장은 "목표수익률이 2%대인 금리를 소폭 웃도는 수준으로 낮아졌고, 보수적인 운용을 원하는 추세로 바뀌었다"며 "이는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가 낮아진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고액자산가들은 새해에도 여전히 ELS와 원금보존형 절대수익스와프(ARS)등 원금 보장이 가능한 상품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액자산가들 사이에서도 초저금리 시대의 대안으로 중위험 중수익 상품이 뜨고 있는 셈이다. 시장이 부진한 상황에서 공격적인 투자보다 일정한 수익을 내왔던 비교적 안전한 상품을 찾고 있는 것.

ELS의 경우 위험성이 있는 종목형보다 지수형 ELS가 인기를 끌고 있다. 종목형 ELS는 현대중공업 LG화학 등 화학·정유주의 폭락으로 녹인(손실구간 진입)이 발생한 이후 투자 수요가 감소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주식시장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면서 위험성이 낮은 상품에 수요가 몰렸다는 게 PB들의 설명이다.

ARS는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를 담보로 차입한 주식을 롱숏으로 운용하는 상품이다. 연 7~8% 기대 수익으로 히트를 친 바 있다.

국내 주식투자 비중도 늘리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 삼성SDS제일모직 상장으로 쏠렸던 투자자들의 관심은 다시 흩어지고 있다. 새해 삼성SDS, 제일모직과 같은 기업공개(IPO) '대어(大魚)'가 부재하고, 당분간 주가 흐름이 부진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강 팀장은 "종목별로도 적극적인 투자를 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주식투자를 원하는 자산가에게는 코덱스레버리지를 통한 박스권 대응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 新투자 키워드는 '중국·저유가'

서재연 KDB대우증권 PBClass갤러리아센터 이사는 최근 중국 본토 주식에 대한 문의를 많이 받는다. 지난해 말 3000선을 돌파했던 중국 상해증시가 올해도 고공행진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 증시를 대신할 투자처로 중국이 떠오른 것이다.

특히 홍콩과 상해 증권거래소의 교차매매를 허용하는 후강퉁 제도가 시행되면서 본토 A주에 투자하는 고액자산가도 늘어나고 있다.

실제 일부 증권사의 강남, 잠실 등 대형 점포에서는 올 고액자산가들의 일평균 A주 거래액이 2배에서 많게는 5배까지 증가했다. 이들은 주로 중국평안보험, 중신증권, 초상은행, 상하이자동차 등 금융·자동차주 등에 직접 투자했다.

서 이사는 "고액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중국 본토 주식에 대한 문의가 늘고 있다"며 "아직은 펀드로 간접투자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중국 증시에 대한 기대감으로 직접 투자에 대한 수요도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저유가도 새로운 투자 키워드로 떠올랐다. 저유가가 금융시장의 핵심 변수로 꼽히면서 유가 관련 상품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다.

고액자산가들의 수요에 발맞춰 KDB대우증권, 신한금융투자, 미래에셋증권등 대형 증권사들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설정한 파생상품이나 랩(Wrap) 판매에 나섰다. 유가 하락세가 가속화되면서 조만간 반등세가 나타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진 것이다.

최근 국제유가는 큰 폭으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6일(현지시간) 국제유가는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2009년 4월 이후 최저치로 추락했다.

그는 "최근 유가 관련 상품을 찾는 고액자산가들이 늘어났다"며 "이들의 수요를 반영해 올 상반기 원유를 단기로 분할 매수하는 랩 상품 출시를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경닷컴 강지연 기자 ali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