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 시리즈 혹은 일상성의 얼굴' 대담회 개최
지난 3일 강남구 논현동에 위치한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컬리지(Florida International College) (이하 FIC) 한국 본부에서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타운 시리즈 혹은 일상성의 얼굴’이라는 이름으로 전규환 영화감독과 미래학자 홍정훈의 대담회가 개최되었다.

‘타운 시리즈’로 알려진 전규환 감독은 베니스 국제영화제, 댈러스 아시안 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연출가이다. 이 날 행사에서는 타운 시리즈 중 하나로써 도시에 사는 다양한 인물의 모습을 짐승에 빗대어 그린 ‘애니멀 타운’이 상영되었다.

영화 상영 이후 전 감독은 카이스트 미래전략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이자 FIC 한국본부 대표인 홍정훈과 대담 시간을 가졌다. 홍 대표는 “한국 사회의 경제와 기술은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반면 정신적인 성숙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한 예술의 기능은 무엇인가?”라며 한국 사회 발전을 위한 예술의 역할을 물었다. 그는 이어 “전 감독의 영화 주인공은 주로 사회 취약 계층으로서 우리 사회 불평등과 양극화를 조명한다.”라고 평하며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며 전 감독의 영화가 가지는 사회적 시사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전규환 감독은 “거대화된 기계화·산업화 속에서 대중들을 치유하는 것이 유일하게 예술”이라고 답하며 다양한 사회 이슈들을 다루는 예술 영화 제작에 대한 사회의 관심 및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FIC는 올해 상반기부터 국내 영화 제작 학교와 협력하여 한국에서 영화 이론 실무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미국 플로리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해외 영화 제작 워크숍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특히 전 감독은 FIC가 협력하는 글로벌 영화 제작 학교에서 영화 연출 강의를 할 예정이다.


[전규환 감독과 미래학자 홍정훈 대담회 녹취록]

‘타운 시리즈’ 혹은 일상성의 얼굴

-전규환 감독과의 만남

홍정훈(카이스트 선임연구원, 미래학자)

일시: 2014년 1월 3일 14시-17시

장소: Florida International College 한국본부 3층 (서울 강남구 논현동 85-10)

홍정훈: 전규환 감독은 국내에서는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외국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영화를 좋아하고 제작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 전규환 감독님과 만나게 되어 기쁘다. FIC는 글로벌 영화 제작학교를 설립해 운영할 예정이다. 나도 한 때 영화를 꿈 꾸었는데 꿈을 버리지 못하고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이 자리에는 신년 연휴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담에 관심 있는 동호인들도 참여해 주셨다 감사 드린다. 영화 동호인 및 행사에 초대되어 오신 15 분들과 함께 감독님의 작품을 직접 보면서 얘기를 진행하겠다.

전: 데뷔작이 모짜르트 타운이고 지금 보실 작품이 애니멀 타운, 세 번 째 작품이 댄스 타운이다. 보통 저는 ‘타운 시리즈’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는 도시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모습, 빌딩 숲 뒷면에 감추어진 그늘진 모습을 담은 이야기이다. 영화는 서울에서 촬영되었으나 서울이 아닌 곳, 파리, 동경, 평양, 런던 등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사람들의 도시 이야기이다. 추상적인 ‘애니멀 타운’이라는 타이틀이 있지만 이 제목은 우리가 살고 있는 정글 같은 도시와 짐승 같은 우리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강한 동물, 여린 동물 등 다양한 동물들을 사람에 비유해서 이들이 사는 도시의 이야기를 애니멀 타운에 빗대었다. 기회가 된다면 다른 타운 시리즈 영화를 관람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상업영화처럼 자극적이지는 않으나 생각할 거리가 있을 것이다. 관람하는 동안 스마트폰은 잠시 꺼 주시기 바란다.

(영화 ‘애니멀 타운’ 상영 후)

홍: 사실 애니멀 타운을 오늘 처음 관람하였다. 극 중반까지 어떤 구도로 가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고 집중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극 중반부터 굉장히 몰입이 되는 구도로 나아갔다. 영화의 프로타고스타와 안타고니스타로 가해자 ‘오성철’이 있고 피해자의 아버지 ‘김영도’가 있다. 처음에는 오성철이 소아 성 범죄자이라서 폐지를 줍는 여자꼬마에게 해를 가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전전긍긍 걱정했다. 하지만 사건은 전혀 다른 곳에서 터졌다. 택시를 탄 여자 승객이 무시를 하면서 행패를 부리자 참다가 그만 오성철의 분노가 터쳐 그녀를 외진 곳으로 데려가 폭력을 강하게 행사했다. 오성철이 폭력을 행사한 점은 충분히 이해가 갈만한 상황이었다. 택시비를 돌려준다고 했음에도 승객이 난동을 부리고 그리고 마치 짐승처럼 무시했기 때문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과연 선과 악의 경계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이 성 범죄자이나 이후 착실하게 살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었기 때문이다. ‘악인이라고 항상 악인으로 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전: 타운 시리즈 안에 캐릭터들은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았을 때 우리의 모습들이다. 영화는 도시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 안에 다양한 짐승에 비유될 만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모든 영화가 선, 악의 이분법으로 구분 지어진다. 악인이라면 악인의 전형적인 것들이 등장한다. 방 안의 이상한 물건이라든지. 영화를 제작하는 이들이 백 년 동안 즐겨 쓴 방법이다. 피해자 또한 복수, 분노에 찬 설정들이 많다. 얼마나 도시 안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가 나의 영화가 담은 고민이다. 소아성애는 분명 남을 해치는 것이나 그들 또한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스컴 등은 얼굴을 가리는 등의 장치로 그들이 전형적인 악인으로 보이게 언론에 노출시킨다. 그리고 피해자에게는 동정의 눈빛을 보낸다. 피의자 못지 않게 악마적 모습을 드러내는 피해자들도 있으나. 이 영화를 만들고 1~2년 후 한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았다. 미국의 50대 초반 소아성애자가 있는데 그는 이 성향 때문에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출소를 이틀 남겨놓고 그는 구치소에서 자신의 성기를 잘라버린다.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습을 제대로 보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도시 안에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60억 인구는 저마다 각각의 사연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두 명의 사연, 몇 가지의 캐릭터만 가지고 여러 영화를 만들어낸다. 그런 점이 아쉽다. 타운 시리즈는 이에서 더 확장하여 우리가 학습해온 것을 해체시키고 조금 더 넓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선과 악을 인간이 구분 짓는다는 것이 우습다. 피해자와 피의자를 나누고, 선과 악을 구분하는 현재 우리 모습이 아쉽다.

홍: 영화에서 멧돼지까지 주인공이 된다. 마지막 장면에 갑자기 야생에서 멧돼지가 튀어나와 택시와 부딪혀 죽음을 맞이하는데 배가 고파서 인간세상으로 탈출한 멧돼지가 결국 인간세상에서 죽는 장면을 보고 인간의 세상사가 멧돼지가 사는 야생보다 무섭다는 생각을 했다. 전과자, 피해자, 전과자의 가족이라는 세 개의 분류가 영화 안에 있다. 오성철은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피해자 가족인 김영도가 와서 밧줄을 끊어준다. 상식적으로 우리는 그를 죽이고 싶을 텐데 영화에서 그는 왜 김영도를 살린 것인가?

전: 죽는다는 것은 고통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매스컴에서 많은 죽음들을 접한다. 이는 자신이 처한 고통에서 해방된다는 것인데, 산 자들은 자살을 매우 고통스러운 행위로 평가하나 자살한 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살은 해방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더 힘든 상황이다. ‘이 힘든 세상, 나도 힘드니까 너도 힘들어 봐라’, ‘같이 함께 가자’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홍: 교통사고에서 왜 하필 멧돼지와 부딪혀서 오성철은 죽음을 맞이하는가?

전: 사람들이 그 장치를 추상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어느 날 저녁 12시정도에 귀가하는데 송아지만한 멧돼지가 내 차로 뛰어들어왔다. 이것이 다음 날 아침 뉴스에 보도되었다. 결국 사살되었다. 며칠 전에도 시내 한복판에 멧돼지가 돌아다녀 사살 된 사건이 있었다. 그렇듯 이것은 허무맹랑한 일이 아니다.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영화 속에서 그린 것이다.

홍: 애니멀 타운은 타운 시리즈 2부이다. 1부 모짜르트 타운의 경우는 여러 소외된 계층이 나오고 3부의 댄스 타운은 탈북자가 주인공이다. 전 감독님의 영화 주인공은 주로 사회 취약 계층, 소외된 자들인데 이와 관련하여 미래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한국의 사회 안전망과 복지에 대해 잠시 언급하겠다. 1년 간 국가 미래전략이라는 책을 쓰면서 연구한 결과 2013년도 103조억원의 복지비용을 썼고 30년 후 GDP의 20%를 복지 비용으로 지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을 예로 들겠다. 실직 이후 힘들어 세 모녀가 번개탄으로 자살한 사건이다. 박근혜 대통령 및 여당은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으나 말뿐이고 현재 크게 달라진 바는 없다. 이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볼 수 있는 ‘부정’, ‘제도의 불안정성과 미비’의 결과이다. 전 감독의 영화는 도시 속의 소외된 자와 그 숨겨진 욕망을 잘 드러내어 주목 받고 있다. 사회적 소외계층 및 약자들을 그려내는 것인지? 감독님의 영화는 거대한 타운 즉 도시 속에 외롭고 소외된 인물들의 욕망을 잘 그리고 있어 더욱 더 주목을 받는 것 같다. 이런 도시 속 외롭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전: 의도한 것은 아니다. 어떤 캐릭터를 가지고 쓰겠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영화는 시나리오 없이 촬영하기도 한다. 애니멀 타운의 경우 OST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어떤 캐릭터에 관심이 가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타운시리즈 이야기가 도시라는 주제 안에서 다양한 이들이 얽혀 살아가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타운시리즈 이후 다른 장르들을 실험하고 있다. 상업영화는 관객이 쓰는 것이다. 대중이 이쯤에서는 무엇이 나와야 되고 등을 예측한다. 나는 다양한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대중이 쓰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쓴다. 대중이 쓰는 시나리오와 대중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는 것의 차이이다.

홍: 영화에서 섹스 신이 나오는데 주인공은 전자발찌를 차고 있다. 어딜 가든지 성범죄자임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숨을 쉴 수 있는 기능으로 섹스가 묘사된 것인가? 감독님 영화에서 섹스는 쾌락이나 금기의 문제가 아니고, 죄다 쓸쓸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인가?. <모자르트 타운>에서 오성태와 마담 문형주의 섹스 장면에서 오성태가 성기삽입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위하는 장면은 철저한 외로움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피아노 수리공 박승태와 버스 정류장의 가판대 사장 주유랑은 모텔방 들어가기 전에 서로 콘돔을 산다. 주유랑은 테이블 위에 콘돔을 보고 울음을 터뜨려 결국 모텔을 떠난다. 섹스라는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는 최후의 방해물인 콘돔을 보고 주유랑이 외로움을 터트린 것 같아 보인다. 감독님 영화에서 섹스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 그래서 충무로에서 심의에 걸리기도 한다. 이제 갓 20살 된 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다. 어느 정도 사회의 이슈에 관심이 있는 나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 중반, 5-60대 분들 등 영화를 본 후 대화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관객이 답을 줄 수 있는 등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영화가 되었으면 한다. 그런 면에서 섹스는 필요한 자극을 줄만한 도구로 집어넣은 것이 아니고 성인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넣은 것이다. 어떻게 욕구를 풀고 그 이후에 생활하고 등의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간다. 내 영화는 수위가 높지만 영화가 ‘야하다’라는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이것은 성인 남녀가 해야 할 본능적인 행동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홍: 택시기사 오성철을 무시하는 아주머니를 그냥 때릴 수도 있었는데 치마까지 벗기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 도시 안에 있는 잔인한 폭력성을 나타낸 것이다. 그 범죄자로 인해 도시가 상처받고, 반대로 도시가 그 소외된 이들을 상처 주는 유기적 관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도시가 없어지기도 하고 또 다른 도시가 생겨나기도 한다. 이 넘쳐나는 자본들이 과연 그들을 쳐다볼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가졌다.

홍: 오늘 다양한 계층과 직업의 사람들이 이 대담회 자리에 모였다. 한국사회에 다양한 이들이 구성되어 사는 이 세상 자체가 애니멀 타운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데 이것이 치유되지 않고는 국가가 발전하기 힘들다. 이에 따라 정부는 2015년부터 양극화, 갈등해소를 위해 통합발전전략을 추진하기로 선언했다. 최근 ‘땅콩 회항’사건에서도 조현아가 잘못했지만 비례성의 원칙에 따르면 너무 마녀사냥인 점도 있다. 국민들의 응축된 분노가 이렇게 표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열정의 에너지로 표출되기도 한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우리나라처럼 울면서 환대한 국가는 없었다. 영화 ‘명량 또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로 왜 3분의 1의 국민이 관람하며 열광을 하는지 고찰해야 한다. 여기서 불안정하고 극단적인 국민의 정서가 나온다. 감독님은 이러한 국민의 감정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한 다가오는 미래에 한국인의 정서는 어떻게 변하리라 예측하는가?

전: 천만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 허나 영화인들은 좋은 현상이라고 보지 않는다. 유럽 등지에서는 나올 수 없는 상황이다. 거대 배급사가 자신이 투자한 영화를 위해 관객을 위한 문을 닫아버린다. 그러나 적어도 국민의 상처를 메워줄 수 있는 역할은 했을 것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긍정적이나 영화, 문화 등 예술은 다양해야 한다. 다양한 장르 안에서 다양한 문법을 가진 영화가 나왔으면 한다. 시대의 구미에 맞는 감정을 자극하며 마케팅하기 좋은 영화들이 있다. 이를 이용해 상업영화 제작자들은 이에 몰두한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계산을 하는 것이다. 자꾸 그런 영화들을 만들다 보니 우리가 논쟁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고 있다. 그냥 뜨거워지기만 한다. 나쁜 사람이 나오면 그 안의 본질을 보지 않고 ‘사형을 시켜라’라고 외치는 등의 행위를 볼 수 있다. 관객과 소비자를 훈련시키는 것이다. 다양한 논쟁거리를 가진 영화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문학이나 음악 등도, 걸 그룹 또한 그렇다. 서커스단에서 어린아이들의 허리를 꺾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어린 아이들에게 성형을 강요하고 짧은 치마를 입히는 등 기획사는 포주의 노릇을 하고 정부는 이를 한류라며 부추긴다.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것에 열광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미 선진국은 이에 학습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돈을 벌지는 않는다. 유럽의 경우 드라마보다는 다큐멘터리를 사용하는 등 교양을 높이는 프로그램 위주이다. 우리나라 또한 서서히 바뀌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내 영화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영화지만 가치를 담고 있다.

홍: 2030년 미래는 문화에 영향을 미칠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는데 특히 세계화와 세계 경제의 통합, 저출산, 고령화 사회, 국민 경제 성장 및 불균형 심화, 디지털 기술 등 고도기술 사회 진입, 다인종 다문화 사회화, 여가 사회화, 지방화 시대의 도래가 주목할 환경 요인 등 이다. 이러한 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들 중에 영화라는 예술 장르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지? 대한민국의 사회발전의 동인으로 문화적 역할을 강조해왔고 미국이나 유럽국가들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원동력으로 순수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순수 예술을 창작하는 예술가 입장으로 미래 문화발전을 위해 정부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

전: 나 또한 속물이 되어 대중이 좋아하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해야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빚이 어마어마해서 살 수 없다. 미국, 유럽 어느 나라가 되었든 지원을 많이 해 줘서 큰 영화제에 다양한 영화들이 많이 나온다. 이 영화들이 호평을 받아 관객들이 몰린다. 유럽의 경우 상업영화와 작가영화에 대한 방송 홍보가 제한된다. 같은 출발선상에서 나아간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형 배급사가 방송국도 장악하고 있다. 이를 부를 축적하는 데 쓰고 90% 이상의 목소리를 낸다. 착취 수준이다. ‘손님이 안 든다’고 말하나 그렇게 훈련을 시킨 것이다. 계속 봐와야 그 작품이 좋은 것을 아는데 이를 막고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꺾어 놓고 대형 배급사의 선전만을 하는 것이다. 정부가 외국처럼 더 많은 신경을 써 주었으면 한다. 수많은 대안이 있으나 시행착오를 겪어서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 유럽의 경우 한꺼번에 여러 사업을 할 수 있는 경로를 막아놓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이 지나치게 커진다. 대형 배급사가 배급을 하면 아무리 지루한 영화도 기본은 한다는 데이터가 있다. 극장을 모두 소유하고 있어 상영을 하면 수익이 되기 때문이다.

홍: 영화는 자본이 착취하는 구조에 있다는 말씀 잘 들었다. 하지만 자본이 아니라 ‘기계’가 지배한다면 어떨까? 최근 카이스트에서 동료들과 미래 영화 흥행 예측 엔진을 인공신경지능망과 빅데이터 분석을 이용해서 기획하고 있는 중이다. 이미 영국에서 개발된 에파고긱스라는 영화흥행예측 엔진은 허리우드에서 헤지펀드가 영화에 투자하는 도구로 활용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고 한다. 미래에는 영화작가가 기계에 지배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처럼 아날로그 감성이 줄어들고 디지털화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 창작하는 이들은 아날로그의 감성을 가진다. 하지만 나도 디지털 기계가 있기에 영화를 찍고 상영할 수 있다. 너무 기계화가 되면 우리가 살 길이 없다. 지금도 산업화, 대기업 자본으로 힘든데 기계화까지 된다면 더욱 힘들어 질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없어지는 직업들이 있다. 영화 감독도 이것에 포함될 위험도 있다. 그런 감독의 일자리를 빼는 기계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웃음)

홍: 저는 법학을 전공했다. 이제는 재판도 기계가 판례를 검색해서 빅데이터를 이용해 재판을 하는 도구로 곧 출연할 것 같다. ‘저도 제가 설 자리가 곧 없어지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법률가의 진로로 계속 갔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되었다. 20세기말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인해 세계는 급속히 세계화되면서 지구는 globalization을 맞이하게 되고 서로 다른 문명의 차이로 'Culture Shock(문명의 충격)‘을 겪게 된다.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으로 걸프전이 일어났고 이에 따른 미국의 무기에 대한 비용을 계기로 2008년 경제 위기가 일어났다. 현재는 기성세대들이 새로운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적응하지 못하여 ’Future Shock(미래 충격)’을 겪고 있으며 또한 큰 화두가 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6.25이후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고 있는 반면 정신세계의 발전은 경제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정체된 느낌이다. 미래학자들은 한국의 경제적 발전은 더욱 더 빨리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2045년 1인당 국민소득은 2015년 비해 4배 수준인 9만 달러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신적 성숙도는 경제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여 한국은 경제와 기술만 발전한 소아마비의 불구 현상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러한 미래학자들의 예측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즉, 경제발전과 정신발전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예술의 기능은 무엇이고 영화인들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노력해야 하는 바는 무엇인가?

전: 모든 것이 디지털화가 되어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점차 메말라 간다. 하지만 반대로 더욱 풍부해 질 수도 있다. 이러한 기계화, 산업화를 치유하고 거대화된 산업화 속에서 이를 치유하는 것이 유일하게 예술이다. 예술이 지향하는 것이 이런 것이다. 예술의 잣대 또한 ‘어떤 것이 예술인가?’ 대중가요도 좋은 클래식이 될 수 있다. 몇 십 년이 지나도 사랑 받는 노래가 있는 것처럼. 얼마나 대중을 치료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지만 너무 감성만 자극하는 영화도 좋지 않다. 어떤 때는 쇼크도 필요하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렸을 때, 그림 안의 아름다움은 없으나 전쟁의 잔인함을 통해 일반 사람들은 치유를 받았다. 타르코프스키 등 여러 감독들의 영화들을 본다면 매우 지루하지만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영화는 충격을 줄 수도 있다. 사실 내 영화도 자극적이라서 충격을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창작의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돈이 되니까 그 방향만 따라 예술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홍: 저도 영화 공부를 위해 시나리오 스쿨을 다녔다. 마치 수학의 구조방정식을 푸는 것처럼 패턴을 맞추는 훈련만 받았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 다음 씬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었다. 상업주의에 훈련이 된 느낌이었다. 전 감독처럼 예술의 본연적인 ‘성찰적’기능에 집중해야 하나 우리는 ‘도구적’ 이성 기능을 강화하는 훈련만 받았다. 나는 얼마나 성찰을 해 보았나 반성을 해 보았다. 이러한 방향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예술의 기능이라고 생각한다.

관객1: 영화가 상업주의로 치우쳐져도 안되고 감동과 치유의 역할도 해야 한다. 영화 명량의 경우 사회적 현상과 접목해 시기 적절하게 나왔다고 생각한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서 사람들의 상실의 감정을 치유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견이다. 물론 상업주의로 치우쳤다는 점은 부정적이나 시기 적절하게 나와 관객들이 호응하고 이들에게 따뜻함을 주는 기능도 한다. 사회적 흐름과 같이 가고 치유할 수 있다면 보다 훌륭한 영화가 될 것 같다.

홍: 명량을 비롯한 여러 사극이 현재 흥행하고 있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은 대체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이다. 우리나라 또한 사극이 유행하는 이유가 ‘미래에 대한 불확실’에 대한 불안함이 이에 반영이 된 것은 아닐까?

전: 명량이 관객의 감성을 건드린 것은 좋다. 하지만 굳이 피가 튀는 전쟁을 통해 세월호 사건,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운 국민의 마음을 다스리고 진정한 리더를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마케팅 또한 이를 부추기는 역할을 하였다. 대중을 감동시켰으므로 이 또한 훌륭한 영화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전쟁놀이를 통해 국민의 마음을 얼마나 치유할 수 있을까라는 또 다른 의문이 있다. 피 없이 잔잔하게 감동을 주는 미하엘 하케네의 ‘아모르’와 같은 영화들이 있다. 내가 만들지 못하는 결과물에 대해 질투를 느끼면서도 감동을 하곤 한다. 가끔 눈물이 나기도 한다. 세상에 좋게 감동을 주는 영화들이 많고, 이를 만들어 낼 환경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자본에 의해 막혀지고 길이 없어지니 아쉽다.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가 아니다. 땅이 좁지만 인구가 매우 많은 거국이다. 이 많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 항상 배우 얼굴과 감독 이름만 다른 똑같은 영화가 나온다. 명량과 비슷한 영화가 또 제작된다고 하는데 관객은 이에 춤을 추는 것이다. 진정한 리더, 국민의 집약 등 마케팅 전략에 휘둘린다.

관객2: 디지털이 발전해 굳이 영화를 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결국 ‘알려주지 않아서’ 못 보게 되는 것이다. 수많은 방송국들이 전파를 낭비하지 않고 다양한 영상을 짤막하게 소개해 준다면 훨씬 도움일 될 것이다. 보고 싶은 이들은 인터넷으로 볼 수 있으니 대형 배급사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전: 벌써 대기업은 골목 상권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홍보비만 몇 십 억씩 들인다. 우리는 많이 써봐야 1억 정도이다. 대형 배급사들도 이에 들어와 자신들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작은 시장들에 들어와서 장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에 또한 밀리게 된다. 노출의 기회도 잃게 되는 것이다. 연간 상업영화가 7~80편 나온다면 독립영화는 150~200편 정도 나온다. 운이 좋으면 새벽에 한 번, 낮에 한 번 상영되는 것이 50편정도 되고 나머지는 사장된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영화적, 창작의 철학으로 제작을 한다. 하지만 대기업은 정부에서 펀딩을 받는다. 그 돈으로 90% 이상의 문화를 장악한다.

관객1: ‘명량’ 영화가 감성을 자극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충돌되는 영화평들이 있다. 결국 보수에 속하는 매체들이 강자의 입장에서 배급을 휘어잡고 홍보를 하다 보니 예술적으로 비평을 받아야 될지 생각을 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홍보를 한다. 그러다 보니 영화가 뜨게 되는데 그것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사람들에게 진정한 예술로 평론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이 되어야지 소수 영화사와 독립영화들도 살아남을 수 있다.

전: 입법화가 필요하다. 독점의 고리를 하나만 끊는다면 된다. 대기업은 투자만 담당하고 제작은 영세업체가 하고 배급사는 따로 있어야. 하지만 이를 놓지 않아 문제가 된다. 지금도 규제를 풀어주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불합리한 이러한 제도와 법은 고쳐져야 하는데 안타깝다.

관객3: 법이 하루 아침에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관객의 눈이 이에 익숙하지 않고 학습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감독님은 그런 관객들의 눈을 열어주기 위한 어떤 개인적은 노력을 할 수 있는지. 영화로만 이야기한다면 영화 자체를 보여주지 못해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쓸 수 있을지?

전: 저는 작가영화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체로 상영 이후 만족도는 크다. 반면 어떤 상업영화는 보고 나오면서 욕을 하기도 한다. 마케팅에 눈을 멀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마케팅을 하지 못하고 극장을 잡지 못한다. 우리 영화가 관객의 만족도는 높일 수 있지만 배급이 힘들다. 인생을 흔들만한 좋은 예술영화가 많다. 이것이 관객을 끌어 모으고 오래 상영되어야 하는데 2~3일 후에 대형 배급사의 영화가 개봉한다면 슬그머니 내려지는 현실이다. 이러한 반복으로 인해 관객의 의지를 꺾는 것이다. 상업영화는 몇 주 전까지 영화를 받으나 독립영화의 경우 당일 날까지 불투명하다. 제일 인기가 없는 곳에 상영된다. 시장 자체가 매우 불합리하다. 예로 마트와 작은 가게의 라면을 들 수 있다. 아주 맛있어도 작은 가게의 라면은 유명해지기 힘들다. 이처럼 대기업의 자본의 벽에 걸려서 진열되지 못하는 비애가 있다.

관객2: 지구가 한 촌이므로 세계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대형 배급사도 자신들이 작다고 생각할 것이다. 세계 최고가 아니면 힘을 못 쓰는 세상. 정부가 다른 나라와 결합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전: 관심 있는 의원들이 입법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폭력적인 독과점 형태의 비즈니스를 끊으려는 제도가 필요하다.

관객1: 멧돼지가 산에서는 강자이나 산에서 살지 못하고 도시로 내려올 수 있다. 이 멧돼지를 난폭하다고 죽일 것이 아니라 이를 잘 키울 수 있다면 상생하는 사회가 될 것 같다. 독립영화 촬영의 장을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독립영화처럼 비평 받아 마땅한 좋은 영화들이 많다. 그러한 공간을 만들어 준다면 상생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다.

관객 4: 예술가들은 항상 배고프다고 하는데 혹시 감독님도 그런 배고픈 경험이 있었다면, 그 배고픔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색깔이 한 쪽으로 치우친 적은 없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