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의 9개 교향곡은 인생 풀어낸 철학책"
1988년 창단한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이듬해 임헌정 상임지휘자를 영입해 25년 동안 호흡을 맞췄다. 국내 최초로 말러,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는 등 한국 음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부천필은 임 지휘자가 지난해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로 자리를 옮기며 전기를 맞게 됐다. 포디엄에 새롭게 오르는 사람은 박영민 상임지휘자(50·사진)다. 지난해까지 상임지휘자를 맡았던 원주시향에서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 연주를 하는 등 새로운 시도로 주목을 받아왔다.

7일 서울 역삼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부천필이 그동안 좋은 평가를 받아온 만큼 유지를 잘 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며 “잘 지은 건물을 잘 관리하는 것이 목표”라며 겸손한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올해 부천시향이 준비한 프로그램에서 그의 강한 의욕이 느껴졌다. 먼저 ‘말러, 자연과 삶 그리고 죽음’이란 이름으로 세 차례 말러의 교향곡을 선보인다. 이렇게 3년 임기 동안 9곡을 모두 연주한다. 우선 오는 30일 부천시민회관에서 열리는 그의 취임 연주회에선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을 무대에 올린다.

“말러의 9개 교향곡은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쓴 철학책 같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3년 동안 각각의 주제를 정해 말러의 교향곡을 스토리로 풀어낼 생각입니다.”

새로운 정기 연주회 ‘월드 클래식 시리즈’도 준비했다. 첫 공연은 내달 27일이다. 에네스쿠의 ‘루마니아 광시곡’과 히나스테라의 하프 협주곡, 글라주노프 교향곡 4번을 연주한다. 모두 한국에서 쉽게 듣기 어려운 곡들이다. “전 세계 모든 오케스트라의 주요 레퍼토리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작품이에요. 에네스쿠는 루마니아, 글라주노프는 러시아, 히나스테라는 아르헨티나 사람입니다. 새로운 색깔의 곡을 들을 수 있는 공연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외에도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시벨리우스와 덴마크 작곡가 카를 닐센의 곡으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예술의전당이 매년 주최하는 교향악축제에선 폐막공연(4월19일)을 맡아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을 준비했다. 프로코피예프의 최대 걸작으로 손꼽히는 대곡이다.

그의 진의(眞意)는 인터뷰 말미에 들을 수 있었다. “계속 새로운 시도도 하고 수준도 높여야 유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당히 하면 금방 퇴보하게 됩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