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
작년 우리에게 가장 큰 희망을 준 사건은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8 대 1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일일 것이다. 그간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는 일방적으로 무너지기만 하는 추세였다. 이를 반전할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해방 후 국민의 86%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선호할 때 등장한 이승만의 건국 결단이나 6·25전쟁 때 낙동강전선의 방어를 연상시키는 대한민국의 획기적 승리로 필자는 묘사하고 싶다.

통진당은 강령에 ‘일하는 사람이 주인 되는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과 ‘주한미군 철수, 한·미 동맹 해체’를 담은 반미사회주의국가 수립을 지향한 정당이다. 과거 반국가적 행동을 무소불위로 자행했고 이석기 전 의원 일당이 대한민국에 대한 무력공격까지 음모했다.

이런 정당의 해산 결정을 두고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이었던 강우일 대주교는 박근혜 대통령을 ‘히틀러’에, 헌법재판관들을 히틀러에 찬동한 ‘독일 재판관들’에 비유했다. 그간 대한민국은 정치인, 종교인 기타 누가 이런 언행을 하고 다녀도 속수무책이던 나라였다. 지난 대선의 결과가 달랐다면 8 대 1의 정반대 결과가 나왔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을 터이다. 이런 지경에서 우리가 아직 건강한 대한민국의 법과 정신을 확인하고 2015년을 맞이함은 실로 상쾌한 일이다.

‘인간은 그가 먹는 것이다(Man is what he eats)’는 19세기 유물철학자 루트비히 포이에르바흐가 한 말이다. 개인이 좋은 몸을 만들려면 그가 섭취하는 음식을 잘 선택해야 하며 말초신경이 유혹하는 당분과 기름기만 먹으면 결국 몸을 망치게 된다. 국가의 건강은 그 국민이 섭취하는 양식(良識)에 의해 결정된다. 국민이 듣기 좋은 정치적 선동에만 의존하면 국가는 히틀러의 독일이나 페론의 아르헨티나가 됨이 당연하다.

한국의 의식구조는 최근 20여년간 급속히 좌향으로 이동해왔다. 그 영양공급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크게 기여했다. 학생들은 대한민국 역사와 체제를 잘못된 것으로, 경제와 안보의 성취보다 시장의 패악, 기업의 탐욕을 배웠다. 이렇게 교육된 세대가 교육·문화·연예·언론의 현장을 지배했다. 인터넷포털·영화·방송·소셜 미디어 등이 좌파 일색이 됨으로써 국민의 이념성향은 김대중 정부 때보다 노무현 정부 시대에, 노무현 정부 때보다 이명박 정부 시대에 더 좌편향하게 됐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입법·행정기구가 무능·일탈에 빠지고, 경제와 기업이 침체함은 국민의 이런 이념편식과 무관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광복 후 70년이 된 올해 ‘국가혁신 경제도약’을 이루자고 강조했다. 그러나 도약은 긍정적 에너지가 도처에 축적돼 폭발압력이 존재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국가사회가 자유민주주의·경쟁·성장·법치 같은 긍정적 마인드와 지식으로 충만해지면 이에 상응하는 정치사회제도 혁신이 뒤따르게 된다. 그리되면 기업은 정부가 말려도 이윤 획득의 길을 찾아 투자하고 혁신하는 길을 스스로 개척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 필요한 것은 혁신·도약에 대한 조급성보다 2015년 이후 새로운 70년을 누릴 정치·경제 도약의 기본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할 일은 무엇보다 전교조, 정부조직, 공영방송 등에서 발생되는 부정적 에너지부터 차단하는 것이다. 예컨대 신은미의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같은 책들이 어떻게 문화체육관광부 추천 우수도서가 되는가. 작지만 이런 것부터 찾아봐야 한다.

작년 말에는 통진당 해산 이외에도 여러 좋은 조짐이 나타났다. 좌파 영화만 무수히 흥행되던 극장가에 ‘국제시장’이 나타나 뜻밖의 대박을 터뜨렸으며, 무상급식 반대가 68%에 이른다는 여론조사도 나왔다. 이는 우리 국민이 경험을 통해 새롭게 깨어나는 징조일지 모른다. 원래 한국 정도의 문명국이 되면 민주주의 질서가 이 정도 오염될 때 그 자정기능을 발동함이 상식 아닌가. 2015년 우리가 커다란 희망을 가지는 이유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