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현 아이센스 공동대표가 서울 본사에서 혈당 측정기 ‘케어센스’를 소개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남학현 아이센스 공동대표가 서울 본사에서 혈당 측정기 ‘케어센스’를 소개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혈당 측정기를 개발해 봅시다. 2년만 해보고 안 되면 손 털겠습니다.”

2000년 서울 광운대 실험실에서 화학과 교수 두 사람이 석·박사 과정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혈당 진단 시장은 스위스 로슈, 미국 존슨앤드존슨과 애보트, 독일 바이엘 등 다국적 기업이 장악하고 있을 때였다. 외부에서 모은 투자금 6억원은 제자들 월급과 연구비로 딱 2년을 버틸 수 있는 돈이었다. 두 교수와 제자는 시한을 6개월여 남겨둔 1년6개월 만에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1000억원대 기업을 책임지는 경영인이 됐다. 차근식·남학현 아이센스 공동대표의 이야기다.

◆거대 기업 장악한 레드오션에 진출

아이센스는 혈당 검사지(스트립)와 측정기를 만드는 회사다. 손가락에 침을 찔러 나온 소량의 피를 검사지에 묻히면 5초 만에 측정기에 혈당 수치가 뜬다. 혈당 관리가 필요한 당뇨병 환자에게 필요한 제품이다. 2013년 코스닥에 상장한 이 회사는 지난해 1000억원 이상 벌었다. 영업이익률은 20%를 웃돈다.

차·남 대표가 처음부터 혈당 측정기에 관심을 둔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1999년 정부 과제로 전해질 분석기(혈액 속의 나트륨 염소 칼륨 칼슘 등 전해질 양을 분석하는 장비)를 개발했다. 전해질 분석기를 사업화할 중소기업을 선정하는 게 정부 과제의 조건이었는데 끝내 선정하지 못했다. 주관 부처인 산업자원부(현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그들에게 직접 사업을 해볼 것을 권했다. 남 대표는 “처음에는 기술을 개발해 기업에 판 돈으로 연구하는 벤처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고 했다.

차·남 대표는 전공인 전기화학 분야 중 돈을 벌 수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조사했다.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분야가 혈당 진단이었다. 당시 세계 혈당 진단 시장은 7조원 규모였다. 하지만 로슈 존슨앤드존슨 애보트 바이엘 등 4대 다국적 기업이 국내 시장만 98%를 차지하고 있었다. 기존 제품으로 혈당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혈액이 4㎕가 필요했다. 4㎕는 피가 ‘주르륵 흐르는 정도’의 양이다. 측정 시간도 30초가 걸렸다. 차·남 대표는 ‘0.5㎕(침으로 찔렀을 때 한 방울 맺히는 정도의 양)로 5초 만에 측정’하는 제품을 개발하기로 했다. 남 대표는 “국제적으로 장사를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특허를 우선 신경 썼다”고 했다.

◆“준비된 자에게 운도 따른다”

시제품이 완성되자 국내 대기업과 제약사의 문을 두드렸다. 하나같이 ‘대량 생산이 가능하냐’며 난색을 표했다. 남 대표는 “좋은 기술이면 당연히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결국 직접 생산 아니면 길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때마침 국내 혈당 진단 시장에 틈새가 생겼다. 대리점을 통해 혈당 측정기를 판매하던 다국적 기업들이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 본사 직영체제로 돌아선 것. 화가 난 대리점과 유통상들이 “우리가 팔아보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남 대표는 “시장 분위기가 호의적이었던 것은 행운”이라며 “제품 판매를 시작한 첫해(2004년)에 1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했다. 같은 해 미국 혈당 측정기 업체인 아가매트릭스 관계자가 찾아왔다. 기존 특허에 걸리지 않는 검사지를 수소문하다가 아이센스를 찾아낸 것. 남 대표는 “각종 특허를 모두 분석해 회피해 놓은 게 결정적일 때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아가매트릭스는 현재 아이센스의 최대 고객사 중 하나다. 2005년 36억원이던 매출은 1년 새 128억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확실한 2등 전략이 목표”

위기도 없지 않았다. 100엔당 900원대였던 엔화를 빌렸는데 2008년 금융위기로 1600원대까지 치솟으면서 50억원 넘게 빚이 생겼다. 남 대표는 “다행히 당장 현금으로 갚아야 할 상황은 아니었지만 장부상 부채비율은 크게 올라갔다”고 했다. 아이센스는 2008년 코스닥 상장 심사에서도 탈락했다. 매출에서 아가매트릭스에 판매하는 비중이 70%였기 때문이다. 이후 시장 다변화를 시도했다. 2011년부터 일본 아크래이에 제품을 공급했다. 2012년에는 뉴질랜드 정부 입찰에 참여해 세계 1위 로슈 등을 제치고 3년간 혈당 측정기 독점 공급권을 따냈다. 올해는 중국에 직접 판매망을 구축하는 게 목표다.

남 대표는 “확실한 2등을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작은 것도 무시하지 않고 만들면 언젠가 시장이 생겼을 때 고객이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세상이 변했을 때 바로 대응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겠습니다.”

조미현/김형호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