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소규조수(蕭規曹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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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소하(蕭何)는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개국 공신이다. 진나라 법을 기초로 구장율(九章律) 등 한나라의 법과 제도를 정비했다. 소하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된 사람이 조참(曹參)이다. 그런데 조참이 3년이 되도록 정사는 돌보지 않고 집에서 손님들과 술자리만 벌이자 2대 황제인 혜제는 화가 났다. 문책하려 부른 자리에서 조참은 이렇게 말했다.
“고조 황제와 소하 승상은 천하를 평정하고 제도를 제정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제도와 법대로 일하면 됩니다. 그러면 실정은 아니합니다.”
‘소하가 만들고 조참이 따른다’는 소규조수(蕭規曹隨)는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다. 전쟁과 나라가 바뀌는 변고를 겪은 백성들은 조참 덕분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개혁한다고 법·제도 양산 안될 일
조참의 경우는 어쩌면 예외적일지도 모른다. 새로 권력을 잡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빛나는 무엇인가를 새로 만들고 싶어한다. 정부 정책이 대통령 공약에 따라 5년마다 춤을 춘다. 노무현 정부 때 국정 키워드였던 ‘혁신’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간판을 전부 내렸다. 또 이명박 정부가 내건 ‘녹색’은 새 정부 들어 금기어가 되고 말았다. 자원 외교를 심판하겠다는 국정조사도 가만 보면 같은 맥락이다.
소규조수는 백년대계를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먼 장래를 내다보고 정책을 세워야 국민이 편히 산다. 그런 면에서 교육부는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을 할 자격을 이미 잃었다. 한국경제신문이 2013년 조사했을 때 교육부는 46년간 대학입시 제도를 38번이나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수능이 끝난 뒤엔 또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만큼 입시제도 개편 기록은 계속 경신될 것이다. 교육부가 학생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대입제도를 직접 관장하다 보니 결국 대입전형 가짓수가 수천 개나 되는 누더기 제도를 낳았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헌법은 또 어떤가. 1948년 제정된 이후 1987년 개정까지 무려 아홉 번을 바꿨다. 이에 비해 1787년 제정된 미국 헌법은 별로 바뀐 게 없다. 본체는 지금까지 그대로 있고, 시대에 따라 필요한 것들은 별도 수정조항(27개)으로 더해왔을 뿐이다.
국민 옭아매는 규제 되는 것
제도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법률과 규제만 늘어간다. 특히 19대 국회 들어서는 출범 2년5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의원 입법 건수가 2만건을 넘었다. 같은 기간 정부 입법도 2000건 가까이 된다니 매달 1000개에 육박하는 법률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경제활동과 국민 생활을 옭아맬 촘촘한 그물망을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오죽하면 이 정부 들어 대통령이 직접 단두대까지 얘기하며 규제를 없애겠다고 나서도 성과가 미미하겠는가.
정부나 국회가 부모처럼 국민 생활의 모든 것을 정하려는 데서 새로운 법과 규제는 태어난다. 지난 정부의 것이라도, 전임자가 한 것이라도 계승·보전·유지할 것들은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용 낭비를 줄이고, 국민들이 예측하며 살아갈 수 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막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정부 실패를 막는 길은 정부의 역할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2200년 전 조참처럼 말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고조 황제와 소하 승상은 천하를 평정하고 제도를 제정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제도와 법대로 일하면 됩니다. 그러면 실정은 아니합니다.”
‘소하가 만들고 조참이 따른다’는 소규조수(蕭規曹隨)는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다. 전쟁과 나라가 바뀌는 변고를 겪은 백성들은 조참 덕분에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개혁한다고 법·제도 양산 안될 일
조참의 경우는 어쩌면 예외적일지도 모른다. 새로 권력을 잡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빛나는 무엇인가를 새로 만들고 싶어한다. 정부 정책이 대통령 공약에 따라 5년마다 춤을 춘다. 노무현 정부 때 국정 키워드였던 ‘혁신’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간판을 전부 내렸다. 또 이명박 정부가 내건 ‘녹색’은 새 정부 들어 금기어가 되고 말았다. 자원 외교를 심판하겠다는 국정조사도 가만 보면 같은 맥락이다.
소규조수는 백년대계를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먼 장래를 내다보고 정책을 세워야 국민이 편히 산다. 그런 면에서 교육부는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을 할 자격을 이미 잃었다. 한국경제신문이 2013년 조사했을 때 교육부는 46년간 대학입시 제도를 38번이나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수능이 끝난 뒤엔 또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만큼 입시제도 개편 기록은 계속 경신될 것이다. 교육부가 학생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대입제도를 직접 관장하다 보니 결국 대입전형 가짓수가 수천 개나 되는 누더기 제도를 낳았다.
나라의 근간이 되는 헌법은 또 어떤가. 1948년 제정된 이후 1987년 개정까지 무려 아홉 번을 바꿨다. 이에 비해 1787년 제정된 미국 헌법은 별로 바뀐 게 없다. 본체는 지금까지 그대로 있고, 시대에 따라 필요한 것들은 별도 수정조항(27개)으로 더해왔을 뿐이다.
국민 옭아매는 규제 되는 것
제도를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법률과 규제만 늘어간다. 특히 19대 국회 들어서는 출범 2년5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의원 입법 건수가 2만건을 넘었다. 같은 기간 정부 입법도 2000건 가까이 된다니 매달 1000개에 육박하는 법률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경제활동과 국민 생활을 옭아맬 촘촘한 그물망을 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오죽하면 이 정부 들어 대통령이 직접 단두대까지 얘기하며 규제를 없애겠다고 나서도 성과가 미미하겠는가.
정부나 국회가 부모처럼 국민 생활의 모든 것을 정하려는 데서 새로운 법과 규제는 태어난다. 지난 정부의 것이라도, 전임자가 한 것이라도 계승·보전·유지할 것들은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그래야 비용 낭비를 줄이고, 국민들이 예측하며 살아갈 수 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막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정부 실패를 막는 길은 정부의 역할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도움이 될 때가 있다. 2200년 전 조참처럼 말이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