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지난 6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별관 종합민원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들고나는 출입문 바로 옆 카운터에서 한 할머니가 환한 미소로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료법률 도우미로 활동 중인 강선희 씨(77)다. 이화여대 법대 동창회 간사와 회장을 맡으며 ‘자랑스러운 이화인상’을 받기도 한 그는 2009년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에서 ‘제1회 인권봉사상’을 받으면서 대한변호사협회를 통해 ‘제1호 명예변호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강씨는 “평범한 늙은 할머니인데 고맙다고 치켜세우니까 보답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자꾸 생긴다”며 “‘돌아가실 때까지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삶에 대한 의욕이 솟구친다”고 말문을 열었다.

법원에서 하는 자원봉사는 여타 봉사와 다른 면이 있다. 송사에 휩싸였지만 변호사나 법무사에게 줄 돈이 없어 무작정 법원을 찾는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러다 보니 강씨에게 각종 서류양식 작성법부터 어려운 법률문제를 가져와 물어보기도 한다. 작년까지 서울중앙지법 동관 종합민원실에서 법률 도우미를 했을 때는 하루에 평균 80명 정도씩 상담을 했다.

법대 졸업 후 40년 만에 다시 법학공부

[人사이드 人터뷰] "돈없는 민원인들 '억울한 눈물' 사랑으로 닦아줘야죠"
“민원인들이 천태만상이에요. 저는 상담자격증도 있는데 초창기에는 급작스럽게 법률상담을 하려니 말문이 자주 막혔어요.” 답변을 제대로 못할 때면 ‘내가 묻는 거 답도 못하면서 왜 거기 앉아 있느냐’고 면박도 여러 번 받았다고 한다. 그럴 때면 “이틀만 여유를 주시면 제가 집에 가서 공부해서 가르쳐 드리겠다”고 위기를 넘기곤 했다. 그런 날이면 집에 와서 밤늦게까지 고시생처럼 공부했다. 변호사가 돼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는 감리교회 장로 출신 어머니의 권유로 법학도가 된 지 40여년 만에 민법, 가족법 등의 법률 서적을 사서 용어부터 새롭게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파산부 쪽에서 일을 주로 하는데 공탁, 가사사건, 민형사사건 등 이것저것 하다 보니 스스로가 만물박사처럼 느껴져요. 저 자신도 공부하면서 많이 성숙해졌어요. 속상해서 인상 쓰고 왔던 민원인들이 나중에 웃음 지을 때면 희열을 느껴요.”

재판에 져서 억울하다고 생각하거나 한이 맺힌 민원인도 그를 찾는다. 심지어 10년 넘게 강씨를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는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의 울부짖는 울음을 다 들어줘야 한다”며 “민원인에게 온기를 나누는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집에서 준비해 온 잣과 호두 등을 넣은 커피를 타서 상한 마음을 달래주기도 한다. 그가 들고 다니는 가방에는 커피 이외에도 먹을 것이 많다. 초콜릿, 사탕 등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랑을 준다”며 나눠준다. 종합민원실에서 만난 한 직원은 “강씨와 마주칠 때마다 먹을 것을 챙겨준다”며 “늘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다닌다”고 말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가 좌우명

강씨는 민원인에게 좋은 글을 써주기도 한다. A4 용지에 반듯한 글씨체로 쓴 글은 민원인의 아픔을 달래주거나 위로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화가 난 상태의 민원인은 누구나 피하고 싶어하는 1순위다. 하지만 강씨는 개의치 않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쓴 글을 주며 직접 읽어준다. ‘아무리 해도 다스릴 수 없는 기막힌 일을 당했을 때는 하늘이 정한 운명이라 여기며 세월을 버텨보자. 그 억울함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고 그 잘못된 것을 생각하면 불행함만 더 터지고 그 미운 일을 들춰봐야 상처만 더 깊어간다. 나를 위해서 그 일을 싹 지우고 생각지도 말고 의연히 살자. 세월이 약이라고 했잖니.’ 그가 직접 쓴 ‘화를 다스리는 일곱 가지’란 글이다. 그는 “원망의 내일은 반드시 황폐해진다”며 사랑하고 용서할 것을 강조했다.

가정 문제 등으로 이혼을 고민하는 민원인에게도 따뜻한 글을 적어 준다. ‘부부란 이런 거라오’란 글에는 ‘사는 날 동안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사랑을 나누다가 난 당신을 만나 참 행복했소라고 말하며 둘이 함께 눈을 감을 수만 있다면 그것이 최대의 행복이다’고 적었다. 이런 ‘천사’에게 별명이 없을 리 없다. 화가 난 사람들을 진정시킨다는 의미의 소방차에서부터 구세주, 할머니 변호사, 등불, 명품, 사랑의 배달부 등 10개가 넘는다.

그와 이야기하고 있는 와중에 수많은 사람이 새해 인사를 했다. 한 민원인 홍모씨는 수년간 법원에 찾아오며 그때마다 강씨와 상담을 했다. 홍씨는 귀찮아도 정성스레 상담해주는 그에게 감동해 편지나 추도사를 써오기도 했다. 홍씨는 그를 ‘법원 어머니’라고 부른다. 어느 날은 그에게 추도사를 써왔다. 홍씨는 “힘들어도 싫은 기색 없이 천직으로 알고 어려운 사람들 가슴을 녹여 주며 다독여 주던 故人(고인)의 인자한 모습은 잊을 수 없는 민원인들의 등대 등불이었다”고 추도사에 적었다.

강씨와 법원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봉수 당시 서울지방법원장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등 6개 법대 졸업생을 대상으로 자원봉사할 사람을 모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퉁명한 법원 서비스에 불만을 품은 민원인들이 직원들과 간간이 말다툼을 하는 등 이래저래 외부 도움이 절실하던 차였다. 강씨는 이화여대 법대 동창회 후배들과 합창단원 13명을 데리고 자원봉사를 자청했다. 총 53명의 봉사자가 모집됐는데 62세였던 강씨가 제일 연장자였다. 지금은 모두 그만두고 강씨 혼자 남았다.

작년까지는 1년 중 공휴일을 제외하고는 매일 출근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다. 올해부터는 봉사자들이 늘어 화요일만 법원에 간다. 쉬지 않고 민원인들을 돕는 그의 힘은 작고한 남편의 사랑에서 나온다. 이화여대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는데 남편은 “아모르 빈시트 옴니아(Amor Vincit Omnia·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라고 라틴어로 그에게 청혼했다. 이후 네 자녀를 키우며 바쁘게 살았다. 39세 때부터 이화여대 법대 동창회 간사로 일을 시작했다. 8년간 동창회 회장으로 산악회 등을 조직하고 법대 합창단 등 왕성한 활동으로 30여년간 모교를 위해 봉사했다. 이 같은 왕성한 활동은 이제는 좌우명이 된 ‘사랑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는 말이 가능하게 했다.

가진 것 다 바쳐야 하늘이 감동

‘명예 변호사’ 강씨는 진짜 변호사가 되기 위해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진학을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로스쿨 측으로부터 나이가 많아 입학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뜻을 접었다. 그래도 늘 사회의 낮은 곳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로한다. 법원 직원이나 민원인에게 그는 “욕심은 사망이다”라고 조언한다. 법원 민원실에서 사람들을 돕다 보니 주식이든 부동산투기든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한 경우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재능기부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강씨는 “정신의 문제”라고 답했다. “가진 사람들 많이 만나 봤지만 내가 가진 것을 다 바칠 때 하늘이 감동해서 부의 자리에 앉혀놓아요.”

강씨는 항상 웃는다. 사람들이 나이를 물어봐도 “7, 7은 49”라며 장난꾸러기처럼 답한다. 76세 때는 거꾸로 67세라고 답했다고 한다. 기독교 감리교도인 그는 봉사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보고 자라서 웃으며 산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하다 법원 여직원들과 마주치자 “남자 친구 생겼느냐. 사랑을 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되돌려 받으려 하지 않는 사랑을 하라”고 강조한다. 그가 있는 법원은 이처럼 따뜻하다.

강씨는 새해 인사로 인터뷰를 마감했다. “순한 양처럼 용서하는 아량으로 희망과 활력을 주고 국민들을 아프게 한 고통과 맺힌 어혈이 풀리는 인정이 넘치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人사이드 人터뷰] "돈없는 민원인들 '억울한 눈물' 사랑으로 닦아줘야죠"
명예변호사는…법률 봉사·인권 향상 공적 기려 대한변호사협회 2009년 첫 위촉

명예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법률 봉사와 인권 향상 등에 앞장선 사람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변호사’로 위촉하는 제도이다. 2009년 김평우 대한변협 회장이 처음 만들었다. 강선희 씨는 2009년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 61주년 기념식’에서 대한변협이 위촉하는 ‘제1호 명예변호사’의 영광을 안았다. 10여년간 법원에서 ‘민원 도우미’로 자원봉사활동을 해온 것이 인정됐다.

명예변호사를 만든 김 협회장은 당시 기념식에서 “인권옹호를 기본적 사명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변호사를 대표하는 대한변협이 인권의 고귀한 가치와 우리의 인권 상황을 되새겨 보는 것은 당연하다”며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어느 정도 달성한 한국의 다음 목표는 이제 대한민국을 세계의 인권강국, 인권선진국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변협은 인권문예상, 인권봉사상 등도 만들었다.

2010년에는 두 번째 명예변호사가 탄생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이사장을 맡았던 홍강의 서울대 명예교수가 명예변호사로 위촉됐다. 홍 명예교수는 아동학대 예방과 청소년 정신건강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명예변호사 위촉이 중단된 상태다. 대한변협에서 명예변호사를 제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