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행정장관 선거 때 시 주석 눈밖에 났다" 관측도
◆비부동산사업, 케이맨제도로
리 회장은 지난 9일 저녁 홍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투자회사인 청쿵홀딩스와 통신·에너지·소매사업 등을 담당하는 관계사 허치슨왐포아를 합병해 CKH홀딩스를 설립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CKH홀딩스는 두 회사의 비부동산 사업을 총괄한다. 부동산 사업은 새롭게 설립되는 CK프라퍼티가 맡기로 했다. 투자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합병법인인 CKH홀딩스의 소재지가 홍콩이 아니라 케이맨제도라는 점이었다. 리 회장은 지난해 7월 슈퍼마켓체인 바이자 매각을 시작으로 중국 내 투자 자산을 잇달아 처분해 주목받았다.
홍콩 증시 주변에선 “청쿵그룹이 홍콩을 포함한 중국 사업에서 철수할 것”이란 루머가 꾸준히 제기됐다. 이를 의식한 듯 리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홍콩증시 상장 기업의 75%가 본사 소재지를 각종 규제가 없는 케이맨제도에 두고 있다”며 “이번 결정은 업계의 트렌드를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케이맨제도로 본사를 옮기면 보다 쉽게 경영권을 승계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중화권 언론과 홍콩 증시 관계자들은 리 회장의 이런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추진하는 부패척결 정책의 ‘칼끝’이 최근 기업인들에게까지 향하고 있는 것도 리 회장의 ‘중국 탈출’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중화권 언론들은 그동안 리 회장이 2012년 홍콩행정장관 선거에서 중국 정부가 지지하는 렁춘잉 후보 대신 헨리탕 후보를 지지한 것을 계기로 시 주석의 눈밖에 났다는 관측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부패척결 지속에 기업인 불안 확산
시진핑 정부는 그동안 부패척결을 정권의 최우선 개혁과제로 추진해왔다. 초기에는 공산당 간부와 정부 관료들이 주 타깃이 됐지만 최근 들어선 기업 고위 임원들도 사정권에 들기 시작했다.
왕융춘 전 중국석유 부사장이 비리혐의로 낙마한 것을 시작으로 판중 둥펑자동차 당위원회 부서기, 런융 둥펑닛산 부사장, 쭝신화 차이나유니콤 전자상거래사업부 사장 등이 비리혐의로 현재 조사를 받고 있다. 쑨자오쉐 전 중국알루미늄 사장은 뇌물수수 및 간통 혐의로 공산당 당적을 박탈당한 뒤 사법기관에 이송됐다. 또 지난 5일에는 베이징대 산하 벤처기업인 베이다팡정그룹의 웨이신 이사장, 리유 사장, 위리 최고재무책임자 등 3명이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비리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기업인 중 상당수는 시진핑 정부 들어 부패혐의로 낙마한 고위급 정치인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석유의 왕 부사장은 후진타오 정부시절 상무위원을 지낸 저우융캉 전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의 인맥인 ‘석유방’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베이다팡정의 최고경영진 세 명은 현재 부패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링지화 전 공산당 통일전선부장을 지지하는 세력인 ‘산시방’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링 부장의 가족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일본 언론 닛케이는 최근 “반부패 정책의 여파로 중국 정치인뿐 아니라 기업인들의 불안감도 극도로 높은 상황”이라며 “중국 현지 합작사 최고경영자 낙마로 외국계 기업들의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