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빠지는 등 실질적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회사에서 일어난 분식회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사외이사의 기업 감시 책임을 엄격하게 규정한 판결이어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상장폐지된 코스닥 상장사 코어비트의 투자자 69명이 회사 전·현직 임원과 외부감사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사외이사의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원심을 깨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1일 밝혔다.

2009년 박모 전 코어비트 대표(46)는 비상장사 주식 55만주를 17억6000만원에 매입하고 재무제표에는 110억원을 지급했다고 기재하는 등 횡령 사실을 숨기기 위해 15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저질렀다. 이듬해 이 회사는 상장폐지됐고 증권선물위원회 감리 결과 분식회계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자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이로 인해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냈다.

자본시장법 162조 1항은 이사가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더라도 분식회계 사실을 알 수 없었다고 판단되면 배상 책임을 지우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1심은 박씨를 비롯해 서모씨(51) 강모씨(42) 등 사내이사와 윤모 사외이사(55)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고 총 49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윤씨는 투자자인데 갑작스럽게 사외이사직에 오른 데다 경영에 관한 실질적 활동을 하지 않았다며 책임이 없다고 봤다. 윤씨는 사외이사 급여도 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사외이사의 의무를 더 엄격하게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식회사의 이사는 선량한 관리자로서 주의를 기울여 대표이사와 다른 이사들의 업무 집행을 전반적으로 감시·감독할 지위에 있다”며 “윤씨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이사회에도 참석하지 않은 것은 사외이사로서의 직무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사정일 뿐 상당한 주의를 다했다는 사정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