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리포트] 피케티가 못 본 '부유세 함정'…저축률 떨어지고 國富 유출도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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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 신드롬'에도 부유세 폐지 나서는 유럽
'불만' 커지는 부유세…"근검 절약해 모은 재산 빼앗겨"
저축에 대한 부정적 인식 야기…과세 피하려 자본 해외 유출도
'맹점' 간파 못한 부유세…세계가 자산정보 공유 않고는
부자들, 부유세 국가 떠날 것…정밀한 소득세 부과가 차선책
'불만' 커지는 부유세…"근검 절약해 모은 재산 빼앗겨"
저축에 대한 부정적 인식 야기…과세 피하려 자본 해외 유출도
'맹점' 간파 못한 부유세…세계가 자산정보 공유 않고는
부자들, 부유세 국가 떠날 것…정밀한 소득세 부과가 차선책
![[글로벌 경제 리포트] 피케티가 못 본 '부유세 함정'…저축률 떨어지고 國富 유출도 심각](https://img.hankyung.com/photo/201501/AA.9483771.1.jpg)
이미 유럽 국가들은 앞다퉈 부유세 폐지에 나서고 있다. 부유세를 도입한 유럽 국가는 한때 오스트리아 스웨덴 네덜란드 등 12개국에 달했지만 현재 명맥을 유지하는 국가는 프랑스 노르웨이 스위스 등 3개국뿐이다.
복지 확대와 불평등 해소 위해 도입
부유세는 20세기 초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북유럽을 중심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910년 스웨덴에서 상위 1% 부자들은 전체 자산의 60%를 소유하고 있었다. 이에 따른 불만에 당시 유행하던 공산주의 운동이 결합돼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부유세 시행이 설득력을 얻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발호와 68혁명(1968년 전후에 일어난 좌파 학생운동) 등을 통해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유럽 내에서 커지면서 부유세 시행 국가는 1980년대까지 꾸준히 늘어났다.
이들 국가는 일정 수준 이상인 개인 자산에 대해 1~2%의 부유세를 부과했다. 한국의 종합부동산세와 비슷하지만 현금과 귀금속, 저축까지 과세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범위가 더 넓다. 주택 가격을 기준으로만 부과하는 종부세와 달리 대출분을 제외한 순자산을 기준으로 한다는 점도 다르다. 소득에까지 과세한 프랑스의 부유세는 부유세 중에서도 급진적인 형태였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2013년부터 연소득 100만유로(약 14억5000만원) 이상인 직원을 둔 프랑스 기업에 100만유로 이상 급여의 약 75%에 해당하는 금액을 회사가 세금으로 납부하도록 하는 부유세 제도를 도입했다. 이 같은 부유세는 기업 총매출의 5%를 넘지 않는 선으로 한정되며 2013년과 지난해 소득에 한해 2년간 제한적으로 징수됐다. 이로 인해 약 470개의 프랑스 기업과 프로축구단 수십 곳이 첫해 2억6000만유로, 지난해 1억6000만유로에 이르는 추가 세금을 물었다.
부유세는 부의 집중을 해소하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케티의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에서 부의 집중이 높아진 반면 부유세를 시행한 스웨덴과 프랑스에서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부유세 때문이 아니라 1980년대 이후 이들 국가의 경제성장이 침체한 탓이라는 분석도 있다.
저축 감소, 자본 유출, 조세 저항 등 부작용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가시화되면서 유럽에서는 부유세 폐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가 작년 6월 출간한 저서 ‘새로운 금융질서, 21세기의 리스크’에서 부유세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 단적인 예다. 그는 “부유세는 저축을 징벌하는 제도”라며 “근검절약해 모은 재산에 세금을 걷어 저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타인에게 혜택을 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부유세가 저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지난해 3월 다빗 자임 스톡홀름대 교수가 증명했다. 자임 교수는 2000년부터 7년간 스웨덴 납세자 5100만명을 대상으로 부유세 부과 기준 변화에 따른 자산 축적을 조사했다. 2001년 조사에서 독신자들의 순자산은 부유세(1.5%) 부과 기준인 100만크로네(약 1억4000만원)를 기점으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부유세 부과 시점까지만 자산을 축적하고 이후에는 추가로 저축하려는 유인이 크게 줄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부유세 부과 기준이 150만크로네(약 2억원)로 늘어난 2006년 조사에서는 개인 순자산이 100만크로네 이상 구간에서 대폭 늘었다. 하지만 부유세를 물기 시작하는 150만크로네 이상에서는 해당 자산을 보유한 숫자가 다시 큰 폭으로 감소했다. 아사 한손 룬드대 교수는 “저축 감소는 경제활동에 대한 적극성도 위축시켜 경제가 침체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부유세 부과 대상자의 해외 이민으로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것도 문제다. 특정 국가의 세금이 지나치게 높다면 해당 국가의 부가 다른 나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피케티가 ‘글로벌 부유세’라는 이름으로 모든 선진국이 함께 부유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를 막기 위해서다.
에릭 피샹 보르도대 교수는 2007년 발표한 논문에서 프랑스가 부유세를 도입한 1982년 이후 2005년까지 스위스로 이주한 프랑스 부자만 2만2000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들과 함께 빠져나간 자본은 2000억유로(약 259조원)에 이르렀으며 이는 프랑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연 0.2%포인트 감소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벨기에와 영국, 미국 등지로도 스위스에 못지 않은 ‘부자 엑소더스’가 일어난 점을 감안하면 부유세로 인한 프랑스의 국부 유출 규모는 더 클 것으로 보인다. 2007년 부유세를 철폐한 스웨덴 중도우파 정부는 “부유세를 피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스웨덴 자본이 연간 약 1조5000억크로네(약 200조원)에 이른다”며 국민을 설득했다. 피샹 교수는 “자본이 빠져나가는 만큼 민간투자도 감소해 일자리가 줄고, 세원이 잠식되면서 재정적자는 커진다”며 “스위스로 빠져나간 자본만 감안해도 수만개의 일자리가 줄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부유세는 조세 저항이 다른 세금보다 심해 징세 과정에서도 비용이 발생한다. 프랑스는 부유세 등 세금 징수 과정에 총 조세 수입의 1.6%를 징세 비용으로 쓰고 있다. 미국에서 해당 비율은 0.49%에 불과하다. 1910년부터 한 세기가량 부유세를 시행한 스웨덴에서도 부유세에 대한 조세 저항은 심했다. 부유세 폐지 1년 전인 2006년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6%가 부유세를 내지 않기 위해 일상적으로 속임수를 쓴다고 답했다. 프랑스에서는 탈세로 2004년 부유세로 걷을 것으로 예상한 돈의 28%가 새나갔다.
노영훈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피케티의 말처럼 부유세를 세계 모든 국가가 시행하려면 과세 대상인 금융 및 부동산 자산에 대한 정보를 서로 공유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미 밝혀진 부유세의 맹점을 해결하기 어려운 만큼 불평등을 줄이고 싶다면 소득세를 정밀하게 부과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노경목/김순신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