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회항' 사건은 예고된 리스크였다
최근 들어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일들이 회사 안팎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고객들의 소송이 잇따르고 있고 내부 자료를 빼가려는 해킹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회사 설립 이후 한 번도 없었던 세무조사가 진행됐고 경쟁 회사들의 인력 빼가기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전혀 걱정하지 않았던 일들이고 다른 회사에서나 존재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회사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더 발생할지 알 수 없어 걱정이 됩니다. 지금까지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해 왔는데 계속 이런 식으로 일이 터지면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겁이 납니다. 회사에 존재하는 각종 리스크를 사전에 알고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최근 귀하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회사의 규모가 일정하게 커지고 브랜드가 알려지면 그동안 없었던 일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한꺼번에 등장합니다. 이것은 고객이나 경쟁 회사, 감독 당국을 포함한 이해관계인들이 귀하의 회사를 인식하면서 대응을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귀하의 회사가 시장에서 존재감이 느껴질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이니 기본적으로 좋은 일입니다.

기업 커지면 ‘성장통’ 피할 수 없어

물론 힘들 겁니다. 지금까지 경험은커녕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니 당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준비가 돼 있지 않으니 대처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이 같은 ‘성장통’은 누구나 쉽게 넘어가는 관문이 아닙니다. 상당히 어렵고 고통스럽죠.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해 주저앉고 탈락하는 기업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성장통은 앞으로도 계속될 겁니다. 회사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 크고 더 위험한 문제들에 직면할 가능성이 큽니다. 기업 경영자들에게 성장통은 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즐긴다는 심정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성장통이 없다는 뜻은 성장을 멈췄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에 결코 환영할 일이 아니니까요.

기업의 성장 과정에서 부닥칠 수밖에 없는 리스크는 노력하면 예방할 수 있고 피해도 줄일 수 있습니다. 먼 바다로 나가기 전에 위험을 예상해 준비하면 어려움을 줄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먼 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려면 큰 파도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하고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잃지 않아야 하고 오랫동안 바다 위에 머무를 수 있어야 하고 잡은 고기를 상하지 않게 보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근해 어업과 전혀 다른 환경이니 배를 원양어업에 맞게 재정비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귀하의 회사도 규모나 브랜드와 ‘동반 성장’하는 리스크에 대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귀하 회사가 부닥칠 수 있는 리스크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먼저 회사가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을 모두 열거해 보세요. ‘회사에 문제가 생긴다면 어떤 것 때문일까’를 생각하면서 가능성이 있는 모든 것을 꼽아 보세요.

귀하 회사보다 앞선 회사들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귀하 회사와 같은 사업을 하고 있는 선발 회사들을 벤치마킹해 그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에 봉착했고 어떻게 대처했는지, 성공과 실패의 이유는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해 보세요. 기업의 성장통은 대개 비슷합니다. 따라서 벤치마킹한 회사들의 사례만 잘 연구해도 많은 문제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외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보세요. 리스크 컨설팅을 전문으로 하는 컨설팅 회사들이 있습니다. 또 기업을 경영해 본 경험이 있는 경영자들에게 자문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들은 리스크를 실제로 겪었기 때문에 대응 방안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귀하 회사에 존재하는 리스크의 종류와 내용을 파악했다면 담당 임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대처 방안을 찾아보세요. 기본적으로 리스크를 찾는 과정에서 대처 방안도 상당 부분 함께 파악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리스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발생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법도 깨닫게 되는 것이니까요.

리스크가 파악되면 리스크를 피하고 줄이는 쪽으로 제도와 시스템, 인적 구성 등 신속하게 필요한 조치를 취하세요. 어떤 것은 즉각 시정이 가능할 것이고 어떤 것은 단계적으로 바꿔 나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특히 리스크가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리스크가 현실화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매뉴얼로 만든 뒤 담당 임직원들이 숙지하도록 하세요. 또 회사의 규모가 더 커지면 일상적으로 리스크를 파악하고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주요 임원들에게 리스크와 그 대응 방안을 알려주는 전담자나 전담 조직을 두는 것도 검토해야 합니다.

리스크 대책의 상당수는 사업 구조나 조직 구조 전반을 뒤흔드는 것이어서 쉽게 시행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특히 핵심 리스크는 개선책의 대부분이 실무진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어서 CEO가 직접 나서야 시행할 수 있습니다.

최고경영자가 위기관리 시스템 직접 챙겨야

리스크가 조직과 사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깨닫고 이를 예방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CEO의 몫입니다. 예를 들어 재무구조 악화에 따라 회계장부를 조작해 왔는데 이를 바로잡는 것, 기술이 낙후돼 첨단 기술을 들여오는 것, 경영 사정이 악화돼 구조조정을 하는 것, 해킹에 취약한 보안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해 데이터를 암호화하는 것 등 회사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리스크의 대부분은 경영과 직결돼 있습니다. CEO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 대처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특히 최근 대한항공 사태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오너 리스크는 리스크 중에서 가장 큰 리스크입니다. 이런 오너 리스크를 언급하고 개선 방안을 찾는 것은 실무진의 영역을 넘어섭니다. 오직 CEO나 CEO의 최측근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이 때문에 리스크 컨설팅도 오너나 CEO를 대상으로 할 때가 많습니다. 오너나 CEO를 빼고 기업의 리스크를 파악하는 것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합니다. 회사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리스크는 대부분이 오너나 CEO들과 직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직원들이 회사 리스크의 존재나 개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하는 배경에 이런 사정이 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핵심 리스크는 최고 권력자나 그를 둘러싼 측근 그룹들로부터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고 해법 역시 그들의 몫이었습니다.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중도 하차하는 것은 성장을 못해서가 아니라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위기 대처 능력이 부족해 회사의 성장 동력을 상실하거나 아예 파산하는 것이죠.

최근 대한항공 사태를 보면 조현아 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은 예고된 리스크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리스크 가능성과 개선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임직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왜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아무도 자신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답답함을 토로했겠습니까. 더구나 발생 이후 수습 과정에서 도무지 한국 최대 항공회사라고 보기 어려운 상식 밖의 조처와 언행들이 계속되면서 일이 자꾸 커지고 꼬여만 갔습니다. ‘위기관리 시스템’이 없었거나 있더라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죠.

거듭 강조하지만 위기관리 시스템은 기업의 사활을 좌우합니다. 특히 기업이 커질수록 위기도 커진다는 점을 감안해 위기관리 시스템은 CEO가 직접 챙겨야 합니다.

신현만 커리어케어 회장·'보스가 된다는 것' 저자
한경닷컴 뉴스팀 newsinfo@hankyung.com

<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BUSINESS 996호 제공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