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기로에 선 현대重
현대중공업에서 청춘을 바쳐 일하다 만 60세 정년을 맞아 지난해 말 퇴직한 장기 근속자는 970명에 달한다. 이 회사는 매년 수백명의 정년 퇴직자를 배출하면서 다른 직장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사오정’(45세가 넘으면 정리해고 대상)이라는 말조차 시들해졌을 만큼 많은 기업에서 조기퇴직이 보편화돼 있는 까닭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말 임금 인상을 놓고 노사가 극한 대립을 거듭하는 상황에서도 사업본부별로 이들을 위한 정년 퇴임식을 열었다.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30~40대 후배 근로자들도 저런 행복을 누릴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스스로 줄여잡은 매출 목표

세계 1위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이 지금 기로에 서 있다. 1972년 울산의 조용한 어촌마을에 들어선 이 회사는 30년 만인 2000년대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섰지만, 다시 위기를 맞고 있다. 드라마틱한 영욕의 기업사 그 자체다.

회사는 조선경기 침체와 과당경쟁에 따른 저가수주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3분기까지 3조원 넘게 영업손실을 봤다. 올해도 흑자 전환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옛 영광을 되찾기가 좀체 어렵다는 데 있다. 업황도 좋지 않지만 업황이 살아나도 예전 같은 수주경쟁력을 되찾게 될지 불투명하다.

현대중공업으로선 한때 일본을 대표하던 조선사인 미쓰비시중공업이 한국과 중국에 시장을 뺏기며 조선 수주 잔량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게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중국 조선사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며 어느새 수주잔량 기준 10위권에 속속 진입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매출과 수주 목표로 각각 24조3259억원과 229억5000만달러를 제시했다. 지난해 매출 및 수주목표보다 각각 10%, 25% 줄인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공격 경영에 나서도 모자랄 판에 회사 스스로 축소 경영을 발표할 만큼 상황이 녹록지 않다.

뒤처진 원가경쟁력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7개월 넘게 진통을 겪으며 노사가 합의했던 임금·단체협상안이 조합원 투표에서 부결되면서 또 다른 위기를 맞고 있다. 회사가 “정말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노조 측은 “낮은 임금 수준에 대한 조합원들의 분노부터 달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2013년 기준 평균임금이 7200만원을 넘지만 현대자동차(평균 9400만원)보다 낮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권오갑 사장은 지난해 9월 취임 후 줄곧 “경쟁하는 회사들보다 인건비를 포함한 제조원가가 높아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그만큼 경쟁력이 떨어져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리고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원가경쟁력을 회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쓰비시중공업의 조선사업 전례를 보면 현대중공업이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 경쟁력을 되찾을 방법은 없다. 사측은 물론 근로자들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동력은 위기의식이다. 결코 시간이 많지 않다. 중국 조선사들은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갈림길에 선 현대중공업이 변신의 기회를 잡지 못하면 대규모 정년퇴직자를 배출하는 전통은 ‘사오정’의 칼바람으로 바뀔 수 있다.

김수언 산업부 차장 soo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