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건 한의사협회장
김필건 한의사협회장
정부가 지난달 28일 ‘규제 기요틴(단두대)’ 대상으로 지목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금지 규제’를 놓고 의사와 한의사 단체가 정면 충돌했다.

한의사협회와 의사협회는 14일 오전 10시30분 같은 시간에 각각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며 공방을 벌였다. 김필건 한의사협회장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목이 삔 염좌 환자는 연간 425만건의 한의원 진료가 이뤄지는데, 한의사가 엑스레이를 사용할 수 없어 환자가 직접 양방의원(병의원)에 가 엑스레이를 찍은 뒤 다시 한의원을 찾아온다”며 “진료비와 건강보험 재정이 이중으로 낭비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어 “한의사가 엑스레이를 사용하면 환자들의 불편과 사회적 낭비를 현격히 줄일 수 있다”며 “(의사단체에서) 한의사들이 엑스레이와 초음파를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위한 진료 행위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회장은 “자기들(의사협회)만 유일한 의료집단이라고 착각하고 국민 건강을 볼모로 행해지는 갑질 문화를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추무진 의사협회장
추무진 의사협회장
의사협회는 세종시 보건복지부 청사를 찾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허용’을 전면 백지화할 것을 촉구하는 행사를 열었다. 추무진 의사협회장은 대(對)정부 요구사항이 담긴 항의 서한을 전달하면서 “(의사들의) 면허 반납까지 불사하겠다”고 반발했다. 협회는 항의 서한에서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현행 의료체계를 부정하고 국민의료비 증가, 의료의 질 저하 등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규제 기요틴 과제를 강행하면 11만 의사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강력한 저지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추 회장은 “정부가 의사의 고유 영역을 한의사에게 허용하는 것은 불법을 합리화하는 것”이라며 “정부는 앞장서서 직능 간 갈등을 유발하는 처사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의사협회와 의사협회는 이날 전 회원에게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두 단체의 갈등이 본격화한 것은 국무조정실이 지난달 ‘규제 기요틴’ 민관합동회의를 열고 한의사들의 현대 의료기기 허용 방침을 밝히면서부터다. 의사단체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조치”라고 반발하자 한의사단체는 “국민이 원하는 정책”이라고 맞받아쳤다. 이후 서로를 비난하는 성명전이 계속됐다.

복지부는 양측과 충분한 대화를 나눈 뒤 건강상 위해성 여부를 판단해 허용 의료기기 범위를 정할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중에 있는 4000여개 의료기기 가운데 초음파와 엑스레이 등을 포함해 한의사에게 허용할 수 있는 의료기기 범위를 검토하고 있다”며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은 법률 개정사안이 아닌 만큼 유권해석을 통해 결정하면 상반기 중으로 사용 가능한 의료기기를 곧바로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2013년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지만 의료계 반발에 부딪쳐 한의사들의 의료기기 사용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