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주가연계증권(ELS) 판매액이 월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배경에는 퇴직연금이 있었다. 미국 금리 인상을 앞두고 주식과 채권시장의 동반 침체가 예측되자 원금이 보장되는 ELS에 노후 자금을 넣겠다는 수요가 급증했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ELS 판매액은 10조2317억원으로 종전 최다 판매 기록인 작년 9월의 8조3324억원을 넘어섰다.

○퇴직연금에 빠진 ELS

12월 ELS판매액 사상 최대, 그 뒤엔…퇴직연금 있었다
14일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발행된 판매액 1000억원 이상 ELS는 총 13종이다. 이 ELS들이 흡수한 시중 자금은 2조6542억원으로 집계됐다. 일반적인 공모, 사모 ELS의 발행 규모가 상품당 200억~300억원 선임을 고려할 때 매머드급 상품 대부분이 퇴직연금 전용일 것으로 업계는 분석했다. 이중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발행액이 1000억원에 못 미친 상품까지 합하면 퇴직연금 전용 ELS가 3조원어치 이상 판매된 것으로 보인다”며 “퇴직연금이 ELS의 새로운 수요처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 전용 ELS 상품은 매년 12월에만 나오는 계절 상품이다. 기업이 1년치 퇴직금을 직원들의 DC형 퇴직연금 계좌로 매년 12월 송금하기 때문이다. 개인이 별도의 개인퇴직연금계좌(IRP)를 만들어 추가 납입하는 사례도 있지만 기업에서 연말에 지급하는 퇴직금에 비하면 규모가 미미하다.

12월 ELS판매액 사상 최대, 그 뒤엔…퇴직연금 있었다
30조원의 자금이 몰렸던 제일모직 공모자금 중 일부가 ELS시장에 흘러든 것도 12월 ELS 판매 규모가 유달리 컸던 요인으로 꼽혔다.

○무늬만 ELS 지적도

증권사들이 판매한 퇴직연금 전용 ELS는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로 불리는 원금보장형 상품인데, 평소 흔히 볼 수 있는 공모 ELB와 조건 면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미래에셋증권이 5001억원어치를 판매한 퇴직연금 전용 ELB 600호에는 코스피200지수가 1년 이내에 두 배 이상 오르면 연 3.001%, 그렇지 않으면 연 3%의 수익을 지급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조건 충족 가능성도 낮지만 어느 경우라도 수익률 차이가 미미하다. 미래에셋증권 이외의 업체들이 내놓는 퇴직연금 전용 상품 구조도 대부분 이와 비슷하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은행을 견제하기 위한 증권사 정기예금 상품으로 보면 된다”며 “고객에게도 은행 정기예금 금리보다 연 0.5~1.0%포인트가량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안전 상품이라고 홍보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법상 DC형 퇴직연금 전용 상품의 손실률은 10%를 넘지 못하게 돼 있어 원금 비보장 ELS를 취급하기 어렵다”며 “이 규제가 풀어지면 더 많은 퇴직연금 자금이 정상적인 ELS 상품으로 유입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