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와 LS, LIG, 희성그룹 등 ‘범LG가(家)’가 같은 고민에 빠졌다. 새로운 업체를 인수하거나 신사업을 시작하려는데 공교롭게 모태인 LG그룹과 사업이 겹쳐 함께 살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해야 해서다. 중복되는 사업은 규모를 줄이거나 영업 범위를 조정한다지만 일정 부분 경쟁이 불가피해 ‘상호 간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LG가의 신사협정이 지켜질지 주목된다.

◆LIG·희성, 사업 확대하지만

허창수 GS 회장은 2005년 LG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뒤 기자간담회를 열어 “문서를 쓴 것은 아니지만 LG, LS와 사업이 중복되지 않도록 ‘젠틀맨 어그리먼트’(신사협정)를 적용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후 LG그룹에서 분가한 GS와 LS, LIG, 희성그룹 등은 ‘서로 사업은 겹치지 않도록 한다’는 암묵적 합의를 지켜왔다. LG는 전자와 화학에 주력하고 GS는 정유와 유통, LS는 전선, LIG는 금융, 희성은 전자부품 등에 각각 특화된 그룹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각 그룹이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영역 불가침’이라는 범LG가의 불문율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LIG그룹은 최근 2018년까지 방산과 서비스 사업을 주력 부문으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발표했다. 그룹 매출의 80%인 LIG손보를 KB금융에 매각한 뒤 정보기술(IT)과 유통 서비스를 새로운 캐시카우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건물 공조 및 에너지 컨설팅 업체인 LIG엔설팅과 IT 서비스 업체인 LIG시스템을 합쳐 시스템 통합(SI) 전문 업체로 육성하고 건물관리 업체인 휴세코도 영업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세 업체는 그동안 LIG손보를 비롯한 LIG 계열사의 SI와 건물관리, 공조 부문 등을 각각 담당했지만 LIG손보가 떨어져 나가면서 영업망을 외부로 돌리기로 했다. 자연스레 LG CNS(SI)와 서브원(건물관리), LG전자(공조) 등을 가지고 있는 범LG가와 경쟁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지난 15일 유화업체인 한화폴리드리머를 인수한 희성그룹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규모 창고 천막 소재로 쓰이는 타포린 사업에서 LG하우시스와 경쟁해야 해서다. LG하우시스는 폴리비전이라는 업체를 통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형태로 타포린 사업을 하고 있다.

희성 관계자는 “한화폴리드리머를 인수한 뒤 LG하우시스와 경쟁해야 하는 타포린 사업보다 화장품 포장재(필름시트) 같은 다른 사업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린산업에서도 경쟁

범LG가의 경쟁은 어느 정도 예고돼 왔다. 수년 전부터 LG뿐 아니라 GS와 LS 등이 녹색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GS는 GS칼텍스를 중심으로 한 정유산업과 시너지를 내기 위해 자원개발과 에너지 부문에 공을 들였다. 그 일환으로 2009년 LG상사와 사업부문이 유사한 옛 쌍용을 인수해 GS글로벌로 사명을 바꿨다. 비슷한 시기에 GS건설을 통해 수처리사업을 키웠고 작년 2월엔 에너지 업체인 옛 STX에너지(GS E&R)를 사들였다. 대표적 녹색산업인 수처리와 태양광, 열병합 발전 등에서 모두 LG와 경쟁 관계에 놓인 셈이다. LS는 전기 자동차 부품 사업과 자원개발 부문에서 LG와 겹친다.

LG에서 분리된 그룹들은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LG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하고 있다. LIG는 작년 3월 LG전자 사장을 지낸 남영우 대표를 지주회사 사장으로 영입했다. 같은 때 GS도 자원개발 부문에서 잔뼈가 굵은 하영봉 전 LG상사 사장을 GS E&R CEO로 앉혔다.

LG 관계자는 “진출할 수 있는 신사업의 범위가 한정돼 있다 보니 그룹 간에 사업이 일부 중복될 수 있지만 영업 범위가 달라 실제로 경쟁하는 일은 드물다”며 “서로 협력관계를 맺어 시너지를 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