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세금 인상은 20세기 낡은 경제모델로 돌아가려는 것이다.”(마크 루비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아니다. 중산층을 살려 경제를 더욱 튼튼히 하려는 조치다.”(댄 파이퍼 백악관 선임고문)

18일(현지시간) 미국 CBS방송의 일요 시사프로그램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사진)이 전날 내놓은 ‘부자 증세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공방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민주당 측은 “중산층을 지원하는 길”이라며 적극 지지한 반면 공화당 측은 “부자들의 돈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려고 한다”며 반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전날 △부유층(부부합산 연소득 50만달러 이상)의 자본이득세율 인상(23.8%→28%) △금융자산 상속세 과세 △대형 금융사에 특별세 부과 등을 통해 향후 10년간 3200억달러의 세수를 확충, 이를 중산층에 지원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공화당 “오바마가 계급전쟁 선동”

공화당의 대권 잠룡인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주)은 CBS에 출연, “일부 국민을 잘살게 하기 위해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의 부자 증세안을 비판했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의 세금을 올린다고 해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삶이 더 좋아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미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루비오 의원이 “오바마 대통령이 계급전쟁을 선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뒤이어 출연한 파이퍼 선임고문은 “경제가 과거보다 좋아졌지만 임금 정체로 중산층 소득은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중산층을 지원하기 위해 부유층에 세금을 좀 더 내라고 하는 아주 단순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미 경제에서 ‘낙수효과(tricle-down effect·부유층의 투자와 소비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 이어지는 것)’가 작동하는지 진지하게 토론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 회복에도 빈부 격차가 심화하는 만큼 정부가 개입해 재분배 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제이슨 샤페츠 하원 감독·정부개혁위원장(공화·유타)은 CNN방송에 출연, “세금 인상은 경제를 성장시키고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라며 “세금을 인하하고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월가도 반발했다. 케네스 벤슨 미 증권금융시장협회장은 이날 성명에서 “미국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금융회사를 겨냥한 표적 세금 인상은 경제 성장을 약화시키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인세 개혁 물 건너가나

오바마 대통령의 부자 증세안은 공화당이 반대하고 있어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 증세를 들고 나온 데는 정치적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작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을 모두 공화당에 빼앗겨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 현상)’에 빠질 것을 우려한 오바마 대통령이 내년 대통령 선거 때까지 중산층·저소득층의 지지를 이끌어내 정국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설명이다.

공화당 성향 단체인 ‘세제개혁을 위한 미국인’의 그루버 노퀴스트 회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포퓰리스트들과 손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인세 인하를 비롯한 광범위한 세제개혁은 오바마 정부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와 협력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로 평가돼 왔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부자 증세 제안으로 법인세 인하 논의가 물 건너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