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옷을 벗을까 아니면 상고법원 설치 여부를 봐가면서 움직일까.’

고위급 판검사 출신의 대형 법무법인(로펌)행을 막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시행과 정기인사를 앞두고 판검사들의 물밑 주판알 튕기기가 한창이다. 오는 3월31일 개정 공직자윤리법이 시행되면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법원장, 고등법원 부장판사, 검사장급 등 2급 이상 판검사 210여명은 퇴직 후 3년간 직무 관련성이 있는 연매출 100억원 이상의 20여개 로펌에 취업할 수 없게 된다.
[Law&Biz] 문 닫히기 전 로펌行?…부장판사 20여명 사의
○2월 정기인사 이후 줄사표 가시화될 듯

박흥대 부산고등법원장은 지난 12일 사표를 내고 로펌행을 결심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1명도 대법원에 사의를 밝힌 것으로 확인되면서 취업 제한 대상인 고위급 법관의 줄사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변수가 많다. 법원은 2월로 예정된 정기인사를 지켜봐야 하고, 상고법원 설치법안이 하반기 통과될 경우 고등법원 부장판사들이 재판장 자리를 대거 확보할 수 있다. 구체적인 움직임은 2월 정기인사 이후라야 가시화될 전망이다.

반면 지방법원 부장판사급의 움직임은 활발하다. 이왕 변호사 개업을 염두에 뒀다면 취업 제한이 걸리기 전에 법복을 벗자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미 20여명이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평생법관제로 승진 폭이 줄어들어 지방법원 부장판사로만 맴돌 수 있다는 위기감도 향후 거취 결정의 또 다른 변수다. 올해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대상인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지난해 5대 대형 로펌에서 접촉이 들어왔다”며 “2년간 연봉 약 3억원씩을 제시받은 상태로 고민 중에 있다”고 말했다.

검찰에서는 아직까지 검사장급 이상 인사 중 사의를 밝힌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검사장을 달 수 있다고 생각되면 명예를 위해 남으려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검사장급 이상에서 퇴직하면 개인 사무소로 개업을 해도 이름값으로 사건 수임이 가능한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다만 검찰 조직 전체에 인사 적체가 심각한 만큼 이달 말~다음달 초 예정된 검사장급 인사 결과에 따라 후배들 길을 터주기 위해 ‘용퇴’를 선언하는 사람은 여러 명 나올 것으로 예측된다. 한 부장검사는 “검사장 출신들이 로펌에서 받는 연봉이 예년보다 적어져 일찌감치 그만두는 게 낫지 않으냐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대형 로펌들, “옥석 가려 뽑을 것”

법무법인 바른은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장(준장급)을 끝으로 예편한 이은수 변호사를 올초 전격 스카우트했다. 이 변호사는 육군본부에서 고등검찰부장과 법무실장을 지냈다. 무엇보다 정부와 검찰의 방위산업 비리 조사 및 수사가 본격화할 경우 이 변호사의 역할이 클 것이란 게 바른 측의 기대다. 바른 관계자는 “예전과 달리 고위급 판검사 출신이 와도 전직 근무처 사건 수임을 1년간 제한한 전관예우금지법 등의 영향으로 실적을 바로 내지는 못한다”며 “그럴 바에는 실전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사람을 영입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바른 사례는 대형 로펌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형 로펌에는 이미 직급별로 전관들이 빼곡히 포진해 있다. 김앤장 법률사무소 등 주요 대형 로펌 8곳은 최근 3년간 고등법원 부장판사급 이상 23명, 검사장급 이상 13명 등 총 36명을 영입했다. 로펌마다 불어난 몸집에 걸맞은 수익을 내는 데 고전하고 있어 몸값이 비싼 전관 영입에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다.

배석준/정소람 기자 eul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