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디트로이트 파산 경험이 던지는 경고장
캐나다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개최되는 북미국제오토쇼에 3년 만에 다녀왔다. 이번 참관은 필자가 사외이사로 있는 한국GM의 이사회가 오토쇼와 연계해 디트로이트에서 개최된 덕분에 가능했다. 지난해 1월 취임한 메리 바라 GM 회장과 면담도 했고, GM의 파산으로 잠시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게 된 GM 오리온공장 견학 기회도 있었다.

이번 오토쇼는 2013년 7월 파산 신청까지 한 디트로이트가 작년 12월 파산 종료를 선언한 후 열리는 행사라서 의미가 더 크게 느껴졌다. 도시도 파산할 수 있는가. 당연한 이치다. 개인이나 기업과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도 세금으로 빚을 갚을 수 없다면 파산에 이른다. 이를 보면서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돌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시·군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는 이제 6대 민선 시장·군수를 맞이했다. 그들이 시·군정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에 걱정이 된다. 디트로이트가 1년 반 만에 파산을 종료한 것은 빚을 다 갚아서가 아니라 빚 탕감을 받은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더욱더 경각심을 불러 일으킨다.

한국 수출에서 자동차와 그 부품을 포함한 자동차 산업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이들 완성차와 부품을 합한 자동차 수출은 전체의 13%를 넘어 반도체 산업 11%를 웃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한국 자동차 산업의 장래는 과연 안전한가.

2009년 6월 GM은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그 후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세계적 자동차 기업 GM은 500억달러의 정부 지원을 받는 대신 14개 조립공장과 부품공장을 폐쇄하고 2만명을 감원하는 조건을 수락했다. 이번 한국GM 이사회에서 우리는 구제금융을 받은 GM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성취한, 세계의 공장별 인건비를 비교한 자료를 볼 수 있었다.

지난 5년간 전체 GM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은 거의 그대로인 반면 한국GM 근로자의 경우 80% 정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여건에서 한국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은 과연 지속될 수 있을까.

물론, 자동차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제조 공정의 인건비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인의 강점인 기술개발이나 디자인 경쟁력, 부품 공급 체인 등 비가격 경쟁력이 한국 자동차산업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메리 바라 회장과의 면담에서도 이 점을 부각시키려 했고 그도 이 점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했다. 하지만 이런 장점들이 제조공정의 인건비에서 한국이 처한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가 돼야만 한국 자동차산업 경쟁력은 지켜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자동차산업 일자리가 얼마나 소중한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런 회사에 취직하고 싶어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한때 자동차 도시로 위용을 자랑하던 디트로이트가 파산으로까지 몰락한 경험은 우리에게 경고나 다름 없다. 산업 공동화 현상은 위대한 도시 디트로이트의 일자리를 줄이고 세수입을 감소시켜 시를 파산으로까지 몰고 가지 않았는가. 한국GM 이사회에서 중국GM(상하이) 사장의 이야기는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회사는 근로자의 복지에 대해 책임을 지고, 근로자는 회사가 이익을 남겨야 한다는 전제에 동의를 함으로써 노사는 윈·윈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야코비 슈테핀 GM인터내셔널 사장이 한 발언 또한 귓전에서 떠나지 않는다. “회사가 장기적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익을 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지혜를 부탁합니다.” 디트로이트공항을 떠나며 무거운 마음으로 귀국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오종남 < 유니세프한국委 사무총장·객원논설위원 joh1178@hot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