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로 돌아온 '검투사' 황영기 "힘 있는 금투협 만들겠다"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63·사진)이 제3대 금융투자협회장에 당선돼 서울 여의도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2004년 삼성증권 대표직을 끝으로 증권가를 떠난 지 11년 만이다. 다른 후보에 비해 무게감 측면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아온 그는 선거 슬로건도 ‘힘있는 협회’를 내세웠다. 164개 협회 회원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새 협회 수장을 뽑는 1차 투표에서 50.69%의 지지를 보냈다. 황 전 회장을 포함한 3명의 후보 중 1차에서 과반수을 확보한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결선까지 갈 것이란 당초 예상을 뒤집은 결과다.

황 전 회장이 비교적 손쉽게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자본시장에 활력을 되찾아줄 적임자’라는 공감대를 이끌어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황 협회장 당선자도 개표 직후 한 인터뷰에서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회사 부동산신탁사 등 업권을 가리지 않고 모두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 대외 협상력을 발휘하고 자본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힘있는 협회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황 당선자는 설득력 있는 화술과 세련된 매너, 두터운 인맥을 갖춘 스타 금융인이다. 그러면서도 과단성 있는 성격 때문에 ‘검투사’라는 별명이 따라 붙는다. 그는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물산에 입사했다가 대리 때 그만두고 영국으로 유학갔다. 석사학위를 받은 뒤 뱅커스트러스트 은행에 취직했다가 삼성으로 복귀했다. 그는 이후 삼성그룹을 그만둘 때까지 이건희 회장이 중요한 인물을 만날 때마다 통역을 도맡았다.

여의도로 돌아온 '검투사' 황영기 "힘 있는 금투협 만들겠다"
삼성투자신탁운용 사장을 거쳐 2001년 삼성증권 사장으로 발탁됐을 때는 삼성의 문화인 ‘1등주의’를 포기했다. ‘무모한 점유율 경쟁이 아니라 고객의 신뢰를 받는 게 금융업의 본질’이란 소신에서다. 이 회장도 그의 진정성을 받아들여 1등주의의 예외를 처음으로 인정했다.

황 당선자는 2004년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은행권에 발을 내디뎠다.

2006년 1월 전국 영업본부장이 참석한 경영전략회의에서 단검이 숨겨져 있는 지휘봉을 선물해 화제가 됐다. ‘경쟁에서 지면 죽는다는 각오로 영업에 나서라’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해석됐다.

황 당선자가 가장 큰 위기를 겪었던 것은 2009년 KB금융지주 회장으로 재직했을 때다. 우리금융지주 회장 시절 파생상품에 투자했다 실패한 데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며 금융당국이 사퇴를 종용했다. 그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고 3년간의 재판 끝에 2013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황 당선자가 책임을 지는 것이 맞느냐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황 당선자가 우리금융지주 회장 시절 관료들로부터 회사를 사유화한다는 지적을 많이 들었다. 황 당선자는 자기 회사로 생각하지 않으면 CEO를 할 수 있느냐고 받아치는 등 갈등을 빚었다”고 전했다.

금융투자협회 새 수장인 황 당선자에게 과제도 적지 않다.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자본시장의 규제 완화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황 당선자는 “협회가 단순한 친목단체가 아닌 만큼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통해 회원사 의 고민을 풀어가야 한다”며 “정부와 국회에 금융시장 파이가 커지면 세수도 늘어나게 된다는 걸 지속적으로 강조하겠다”고 말했다.

조재길/황정수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