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이 만든 음울한 미래들
셋 중 가장 먼저 나온 작품은 ‘우리들’이다. 자마친이 작품을 완성한 것은 1920~1921년이었지만 체제 비판적 내용 때문에 1924년 영문판이 먼저 출판됐다. 소설에선 30세기 미래 전쟁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이 단일 국가를 만들어 살아간다. 개인은 이름 대신 알파벳과 숫자로 만들어진 코드를 부여받는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시각에 일어나 명령받은 일을 수행하며 살아간다. 모든 행동은 ‘우리들(공동체)’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 세상이다.
소설은 관료독재체제가 가져올 미래를 비관적으로 그리고 있다. 자마친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지만 불과 3~4년 뒤 ‘우리들’을 내놨다. 그만큼 공산주의 사회가 가져온 회의와 절망감을 빠르게 느꼈다는 얘기다. 자마친은 이 책으로 투옥되기도 했고 결국 프랑스로 망명했다.
‘멋진 신세계’는 1932년 출간됐다. 기술의 발전과 전체주의가 밀착됐을 때 나타나는 비극을 그린다. 모든 인간은 인공수정으로 태어나며 출생 전부터 지능에 따라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등 계급이 정해진다. 계급에 따라 삶도 결정된다. 양육과 교육은 국가 담당이다. 태아 시절부터 조건반사와 수면암시 교육으로 자신의 계급에 대한 세뇌 교육을 받는다. 촉감을 느낄 수 있는 영화부터 불쾌한 감정을 잊게 하는 마약 ‘소마’까지 모든 오락 수단이 제공된다. 억압으로 인한 공포가 아닌 말초적 자극과 욕망이 지배하는 세계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1984’는 두 소설보다 한참 늦은 1949년 발표됐다. 오웰이 그린 미래 사회에선 ‘빅 브러더’가 텔레스크린을 통해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텔레스크린은 끌 수 없다. 체제를 찬양하는 방송이 계속해서 흘러나온다. 국가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을 사람들에게 세뇌시킨다. 체제를 비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감시자의 눈길을 피할 수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체제에 순응하며 살 수밖에 없다.
◆이미 다가온 디지털 사회
세 소설이 그리는 디스토피아는 모두 고도의 기술을 전제로 한다. ‘멋진 신세계’는 유전자 조작과 인공 수정이 자유롭게 이뤄지는 사회이고, ‘1984’에선 발전한 통신 기술이 ‘빅 브러더’의 핵심이다. ‘우리들’에도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상상력 적출 수술 등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떨까. 파블로 피카소는 1964년 한 인터뷰에서 컴퓨터를 두고 “쓸모가 없어. 대답만 할 수 있을 뿐이잖아”라고 말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제2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를 만하다. 구글의 무인 자동차나 퀴즈대회에서 사람을 이기는 IBM의 컴퓨터 ‘왓슨’, 로봇전문기업 아이로봇의 스스로 학습하는 로봇 ‘백스터’ 등 SF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기술들이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매사추세츠공대(MIT) 디지털비즈니스센터의 에릭 브린 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 교수는 ‘제2의 기계 시대’에서 현대사회를 “기하급수적 발전의 후반부”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발전해온 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들은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저자들은 “급격한 디지털화가 이뤄진다면 환경 파괴보다는 경제 붕괴를 일으킬 가능성이 더 높다”며 “컴퓨터 성능이 더 좋아질수록 특정 분야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직원 수도 줄어든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말한다. 평범한 능력에 교육을 덜 받은 노동자는 컴퓨터나 로봇 같은 기계로 대체될 수 있다. 기술 발전이 빈부 격차를 확산시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세 소설 모두 주인공이 체제에 반기를 들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것으로 끝난다. 기술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낼지는 모를 일이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이런 커다란 흐름을 주시하고 감시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소설과 같은 결말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