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윈난성 하니족 마을의 계단식 논 풍경. 산자락을 따라 3700여개의 논이 계단처럼 뻗어 있다.
중국 윈난성 하니족 마을의 계단식 논 풍경. 산자락을 따라 3700여개의 논이 계단처럼 뻗어 있다.
‘소수민족의 땅’이라 불리는 중국 서남부 윈난(雲南)성에는 중국 내 56개 민족 중 절반에 가까운 26개 민족이 살고 있다. 그들의 터전은 대부분 문명의 손길이 닿기 힘든 오지에 있다. 그중 윈난성 남쪽에 있는 하니족(哈尼族) 마을에는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눈부신 절경이 펼쳐진다.

삶의 터전으로 이룬 세계유산

윈난성의 성도 쿤밍(昆明)에서 버스로 달린 지 다섯 시간 반. 사람들이 내지르는 탄성에 곤한 잠에서 깨어났다. 창밖을 보니 하늘에 치마를 펼친 듯 여러 개의 능선이 겹겹이 이어져 장관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훙허 하니족·이족자치주 위안양(元陽)현에 자리한 하니족 촌락입니다. 하니족은 1300여년 전 서북쪽에서 이곳 아이라오(哀牢) 산맥으로 이주해 계단식 논을 일궜습니다.”

하니족 전통의상을 차려 입은 현지 가이드가 환한 미소를 머금고 설명했다. 이민족의 침입과 전쟁을 피해 이곳에 정착한 하니족은 해발 700~2000m에 걸쳐 16만6030㎡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의 계단식 논을 만들었다. 공식 명칭은 위안양티티엔(元陽梯田). 이 경이로운 풍경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산자락 따라 층층이 펼쳐진 계단식 논

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마을.
나무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마을.
관광객은 버스를 타고 논을 잘 볼 수 있는 세 개 지점을 돌아볼 수 있다. 좁다란 산길을 오르기 위해 작은 차로 갈아타고 10여분을 더 달려 도달한 곳은 ‘바다’. 하니족의 계단식 논을 가장 높은 곳에서 조망할 수 있는 장소다. 발 아래로 산자락을 깎아 만든 논이 계단처럼 층층이 이어져 있다. 대단하다는 말만 듣다가 막상 가서 보면 말문이 막힌다. 마치 산에 새긴 판화 같은 형상이랄까. 크고 작은 논이 문양을 이루다 못해 거대한 작품처럼 충격을 선사한다. 아이라오산의 계단식 논은 약 3700개에 이른다.

계단식 논 주변에는 저수지나 강으로부터 물을 끌어 댈 만한 시설이 전혀 없다. 말 그대로 빗물에만 의존하는 천수답이다. 훙허가 고지대의 한류와 만나 비를 뿌리면 울창한 원시림이 그 빗물을 담아 논으로 흘려준다. 덕분에 관개시설 없이도 물이 마르지 않아 농사를 지을 수 있다.

바다에서 9㎞ 떨어진 ‘둬이수(多儀樹)’로 이동하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둬이수는 마을의 이름이면서, 상징목의 이름이다. ‘하니족 남녀는 둬이수 나무 아래에서 사랑을 나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그 말에 어울리듯 나무들이 아주 예뻤다.

15㎞ 정도 떨어진 곳에는 호랑이 입을 닮았다는 ‘라오후주이(老虎嘴)’가 있다. 이곳에서 보는 계단식 논이 하이라이트다. 논에 담긴 물에 햇빛이 반사되면 마치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같은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 물이 차는 매년 11월 중순에서 이듬해 3월 사이에만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보는 위치에 따라 빛의 반사각이 달라지는 것이 아름다워 한참 동안 걸음을 옮기며 바라봤다. 인간의 의지가 이렇게 땅에 새겨진 곳이 세상 어디에 또 있을까.
 ‘용맹하고 엄하다’는 뜻의 이  름을 가진 하니족 사람들.
‘용맹하고 엄하다’는 뜻의 이 름을 가진 하니족 사람들.
하니족 전통 잔치, 창제옌(長街宴)

긴 시간 차를 타고 온 한국 여행객을 위해 하니족 사람들이 잔치를 준비했다. 하니족은 잔치 때 여러 개의 식탁을 길게 붙여 놓고 앉아 수십 명이 함께 먹고 마신다. 중요한 절기에 열리는 큰 행사 때는 수백 개의 식탁을 붙여 그 길이가 수십m에 이르기도 한단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길게 놓인 상에는 닭고기, 생선, 밥과 잘 익은 감자, 각종 견과류, 색색의 채소 등 20여가지 음식이 차려졌다.

“‘하니’라는 이름은 ‘용맹하고 엄하다’는 뜻입니다. 그 이름에 어울리게 하니족의 옷은 흑색을 바탕으로 하고, 음식은 강하고 매운맛이며, 도수가 강한 술을 곁들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또랑또랑한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연회가 시작됐다. 하니족에게 술을 받을 때에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받고 건배하는 것이 예의다. 이때는 ‘도사!’라고 외친다. 노래하듯 성조를 높여 외치는 하니족 사람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그렇게 음식을 먹으며 몇 차례 다함께 ‘도사!’를 외쳤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도사!’만 외치면 만사형통. 마당에 모닥불을 피우고 시작된 춤과 노래는 밤늦도록 이어졌다. 언제까지라도 계속될 것처럼.

여행팁

하니족 촌락은 윈난성의 성도 쿤밍으로부터 약 300㎞ 떨어져 있다. 차로 5시간45분 정도 걸리며, 대중교통으로는 쿤밍 남부 버스터미널에서 위안양 터미널까지 7시간 걸린다. 터미널 앞에서 삼륜차나 택시를 타면 10분 안에 칭커우관광센터에 도착한다. 위안양 관광정보 사이트 ynta.gov.cn/Category_649/index.aspx

훙허=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