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리포트] 각국 중앙銀 '마이웨이'式 통화정책…글로벌 환율리스크 커져
유럽중앙은행(ECB)이 1조1400억유로(약 1390조원) 규모의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 완화 결정을 내린 지난 22일 덴마크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0.2%포인트 낮춰 -0.35%로 떨어뜨렸다. 반면 전날 브라질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해 2011년 7월 이후 최고 수준인 연 12.25%로 끌어올렸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부양을 목표로 일사불란하게 공동 보조를 취해온 ‘동조화’ 전략에서 벗어나 ‘마이 웨이’를 선언하고 있다. 서로 다른 경기회복 속도와 역(逆)오일쇼크, 각국 간 복잡한 환율 갈등 구조가 원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방향을 제각각으로 잡으면서 금융시장의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블랙스완이 된 금리정책

[글로벌 금융리포트] 각국 중앙銀 '마이웨이'式 통화정책…글로벌 환율리스크 커져
세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운 발단은 지난 15일 스위스 중앙은행의 전격적인 환율하한선 폐지 결정이었다. 2011년 9월 이후 유로화와 1 대 1.2 비율로 유지해온 환율하한선을 하루아침에 없앤 것이다. 1주일 뒤인 22일 ECB의 양적 완화 결정이 내려지면 유로화 가치가 폭락하고 이에 따른 환율 유지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을 우려해 선제 조치를 취한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에 대해 “선진국 외환시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번 결정은 블랙스완(전혀 예상하지 못한 악재) 그 자체”라고 전했다. 시장 안전판 역할을 해온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시장에 메가톤급 충격을 안겨주는 진앙이 됐다는 설명이다. 같은 날 인도가 예정에 없던 통화정책회의를 소집해 기준금리를 연 7.75%로 0.25%포인트 낮춘 것도 시장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조치였다. 20일에는 주요 7개국(G7) 중앙은행으로는 처음으로 캐나다까지 100% 동결을 전망한 이코노미스트들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연 0.75%로 0.25%포인트 떨어뜨리며 0%대 금리 대열에 합류했다.

신흥국 중에서는 같은 날 터키가 기준금리를 연 7.75%로 0.5%포인트 낮췄다. 중남미 국가 가운데서는 페루 중앙은행이 지난 15일 기준금리를 연 3.25%로 낮추며 자국 화폐의 평가절하 움직임에 동참했다. 시장은 다음 순서로 호주와 노르웨이를 지목하고 있다. WSJ는 호주의 4분기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0.3%에 그칠 것이라며,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호주가 금리인하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금리 방향 제각각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라는 한 방향으로만 달려가는 건 아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올해 글로벌 금융시장의 이슈는 각국 중앙은행이 각자 처한 상황에 맞게 다른 선택을 하는 ‘불일치’가 될 것이라며 4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우선 미국과 영국처럼 긴축상태로 전환을 예고한 그룹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2008년 12월 이후 6년간 유지해온 제로금리에서 벗어나 올해 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지난달 미국 실업률이 5.6%로 Fed의 목표치인 6%를 훨씬 밑돌고 올해 경제성장률도 3%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경기가 확장국면을 이어가고 있어 일부에서는 상반기 인상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영국 중앙은행(BOE)도 올해 금리인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2.6% 경제성장률을 달성했고, 실업률도 5.8%에 그치면서 지난해 8월 이후 매달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두 번째 그룹은 막다른 골목에 몰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과 일본이다. 톰 엘리어트 드비어그룹 투자전략가는 ECB의 월 600억유로 규모의 국채 매입을 글로벌 환율전쟁을 위한 ‘전함’에 비유했다. 양적 완화가 돈풀기 효과와 함께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을 늘리고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일본은행(BOJ)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의 1.7%에서 1.0%로 대폭 낮추고 필요한 경우 추가 부양책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세 번째 그룹은 중국이다. 올해 7%대 성장률 달성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연초부터 적극적인 경기부양 카드를 빼들었다. 인민은행은 최근 예대율(예금 대비 대출액 비율) 규제를 완화해 시중은행의 대출 여력을 최대 8080억위안(약 146조원) 늘려줬다.

진퇴양난에 빠진 신흥국

시장 예측을 어렵게 하는 마지막 그룹은 신흥국이다. 이들 국가 중 브라질과 함께 금리변동성이 가장 높은 국가는 러시아다.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무려 7.5%포인트 올리며 연 17%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러시아 의회와 시중은행은 비정상적인 금리로 기업들이 연쇄도산에 직면해 있다며 점진적 인하를 요구해 러시아 중앙은행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몰려 있다.

인도와 터키처럼 금리인하로 방향을 잡았지만 관망 중인 신흥국도 적지 않다. 자원 의존도가 높은 칠레는 인접국 페루가 금리를 전격 인하한 지난 15일 연 3.0%인 기준금리를 동결하기로 했다. 한 외환전문가는 “경쟁국이 금리를 잇따라 내리는 상황에서 동결 결정은 인상 효과로 나타난다”며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은 통화 긴축과 환율 방어 사이에서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1985년 플라자합의나 1995년 역플라자합의 당시와 달리 국제사회가 환율 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대책을 내놓기 어려운 점도 각국 중앙은행의 고민을 더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유가 하락 여파가 각국 경제 상황에 따라 달리 나타나고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쟁 상대국의 정책 대응까지 고려해야 하는 등 여러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며 “올해 환율 부침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