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허영인 SPC 회장은 파리바게뜨 가맹점 확장이 한창이던 2000년대 중반 주머니 속에 항상 온도계를 넣고 다녔다. 매장이나 연구소를 방문할 때면 늘 온도계를 꺼내 밀가루 반죽과 제빵실의 온도를 쟀다. 반죽 숙성 온도와 제빵실의 조그마한 환경 변화에도 빵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허 회장이 이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주의를 기울이는 데는 선친인 고(故) 허창성 창업 회장의 영향이 컸다. “회사는 수백만개의 빵을 만들지만 고객은 단 한 개의 빵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빵의 품질에 신경써야 한다.” 허 회장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선친의 품질경영론이다.

고 허창성 회장이 황해도 옹진에 차린 작은 빵집 상미당이 모태인 SPC그룹은 매출 4조원이 넘는 국내 최대 제빵기업이다.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 등을 합해 6000여개의 가맹점을 두고 있고, 하루에 만들어내는 빵만 1000만개가 넘는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중국에 122곳의 파리바게뜨 직영점을 낸 데 이어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에도 진출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SPC의 이 같은 성장 밑바탕에는 대를 이은 허 회장의 품질경영론이 자리 잡고 있다.

대표직 버리고 떠난 제빵 유학

“빵을 주식으로 먹는 나라에서 빵을 어떻게 만드는지 배우고 오겠습니다.”

허 회장은 1981년 삼립식품 대표를 맡은 지 7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부친인 허 창업 회장에게 회사를 떠나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삼립식품은 1970년대 정부의 분식 장려 정책과 호빵 인기에 힘입어 제빵 기업으로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지난해 7월 프랑스 파리 샤틀레 지역에 연 파리바게뜨 유럽 1호점.
지난해 7월 프랑스 파리 샤틀레 지역에 연 파리바게뜨 유럽 1호점.
주변에서는 회사가 잘 운영되고 있으니 한국에 남아 경영수업을 받으라고 조언했지만, 허 회장은 뜻을 꺾지 않았다. 그는 “기업 경영자는 경영 마인드뿐만 아니라 엔지니어처럼 기술 마인드도 갖춰야 한다”며 미국으로 떠났다.

허 회장은 미국 캔자스시티에 있는 미국제빵학교(AIB)에서 1년6개월간 제빵기술을 배웠다. 빵의 종류별로 어떤 밀가루를 써야 할지 고르는 것부터 반죽, 오븐 사용, 모양을 내는 데코레이션 기법까지 익혔다.

유학에서 돌아온 허 회장은 삼립식품의 10분의 1 규모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계열사 샤니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그는 이곳에서 일반 빵과 함께 고품질의 케이크, 화과자류를 생산했다. 삼립식품이 리조트사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해 경영난을 겪는 사이 허 회장은 파리바게뜨와 던킨도너츠, 배스킨라빈스를 론칭하며 사세를 키웠다. 결국 허 회장이 이끄는 샤니가 부도가 난 삼립식품을 인수해 가업의 맥을 이었다.

연구소·매장으로 더 자주 출근

허 회장은 대외 활동에 잘 나서지 않고, 언론 인터뷰도 꺼린다. 그런 그가 말을 쏟아낼 때가 있다. SPC그룹의 통합 연구소인 이노베이션 랩 연구원들과 대화할 때다. 허 회장이 개발 중인 메뉴를 모두 시식한 뒤 빵의 맛과 구워진 정도, 식감 등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통에 연구원들이 진땀을 흘릴 때가 많다고 한다.

허 회장은 지금도 사무실보다 연구소와 매장으로 출근할 때가 더 많다. 현장에 대한 그의 애정은 20대부터 몸에 뱄다. 그는 1960년대 후반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운전먼허부터 땄다. 허 회장은 ‘빵이 맛있는 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차를 직접 몰고 그 매장을 찾았다. 맛있는 빵은 대량 구매해 회사 내에 있던 제빵실로 가져가 신제품 개발에 참고했다.

1983년 샤니 대표를 맡았을 때도 그는 연구소부터 차렸다. 샤니의 이 연구소는 국내 제빵업계 최초의 연구소로 꼽힌다.

한국 바게트 종주국에 역수출

지난해 7월 파리바게뜨가 프랑스 파리 중심가 샤틀레 지역에 유럽 1호점을 내던 날 현장을 방문한 허 회장은 “26년간의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1988년 베이커리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제빵 종주국인 미국과 프랑스에 진출하는 것을 꿈꿨다.

그는 파리 매장 직원들에게 “바게트 본고장에서 바게트로 인정받을 것”을 주문했다. 허 회장은 이를 위해 매장 오픈 두 달 전인 지난해 5월부터 매일 두 차례씩 굽는 정도와 반죽 숙성 시간 등을 달리해가며 바게트를 테스트했다. 그는 “한국인이 밥을 두고 ‘질다’ ‘꼬들꼬들하다’ ‘차지다’ 등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처럼 프랑스인들은 바게트에 민감하다”며 “프랑스인들에게 품질을 인정받을 수 있는 바게트를 만들 수 있도록 맛을 계속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파리바게뜨 샤틀레점은 하루 평균 850명의 소비자가 방문하는 인기 매장이 됐다.

파리바게뜨는 베이커리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 중 하나인 미국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특히 뉴욕 맨해튼 매장은 미국의 전국구 베이커리 체인점인 오봉팽보다 손님이 더 많을 정도로 현지인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중국 사업도 궤도에 오르고 있다.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는 물론 지방 성도와 3선 도시 등에서 122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허 회장은 직원들에게 2020년까지 지금보다 2배 이상 많은 10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세계 1위 제빵기업이 되자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파리바게뜨는 지금까지는 서양의 베이커리 문화를 한국에 소개하는 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식 파리바게뜨를 세계에 알릴 때입니다. 부드러운 미국식 빵과 바삭한 프랑스식 빵에 대한 노하우를 모두 갖고 있으니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겨뤄볼 때가 됐습니다.”

SPC그룹은 삼립식품·샤니가 모태…국내 최대 제빵기업

[새 길을 개척한 사람들] 허영인 회장, 온도계 들고 매장 찾는 CEO…바게트 본고장 '입맛' 사로잡다
SPC그룹은 국내 최대 제빵기업이다. S는 삼립식품과 샤니, P는 파리크라상과 파리바게뜨, C는 다른 계열사를 가리킨다. SPC그룹의 모태는 1945년 황해도 옹진에 만들어진 빵집 상미당이다. 허영인 회장의 선친인 고(故) 허창성 창업 회장이 세웠다. 상미당은 6·25전쟁 이후 서울 을지로로 자리를 옮겼다. 1959년 삼립제과공사로 이름을 바꾸고 제과점에서 제빵기업으로 외연을 키웠다. 삼립식품은 1964년 출시한 ‘크림빵’과 1970년 겨울 간식으로 내놓은 ‘호빵’을 내세워 1위 제빵회사가 됐다. 1972년에는 샤니의 전신인 한국인터내쇼날식품을 설립했다.

차남인 허영인 회장은 1983년 샤니를 물려받았다. 허 회장은 1985년 배스킨라빈스를 한국에 들여와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1988년 문을 연 파리바게뜨는 1997년 베어커리 업계 1위에 오른 뒤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허영인 회장은…

△1949년 황해도 옹진 출생 △1972년 경희대 경제학과 졸업 △1981년 삼립식품공업 대표 △1982년 미국제빵학교(AIB) 유학 △1983년 샤니 대표 △1985년 비알코리아 설립 △1986년 파리크라상 설립 △1988년 파리바게뜨 1호점 개점 △1994년 태인샤니그룹 회장 △2002년 삼립식품 인수 △2004년 SPC그룹 출범 △2004년 파리바게뜨 글로벌 1호점 상하이 구베이점 개점 △2008년 서울대 발전공로상 △2010년 프랑스 정부 공로훈장 오피시에 수훈 △2012년 프랑스 정부 농업공로훈장 슈발리에 수훈 △2014년 파리바게뜨 프랑스 파리 1호점 개점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