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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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초등학교에는 시험이 없습니다. 틀에 박힌 시험으로 아이들을 평가하면 그들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자존감에도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됩니다. 학교 성적이 나쁘다고 아이가 멍청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 22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만난 소피 카르스텐 닐센 덴마크 고등교육과학부 장관(사진)은 “덴마크에서 성공한 기업가들을 보면 고등학교 때까지 성적이 안 좋았던 사람이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덴마크 초등교육에서 강조하는 것은 창의성, 자존감, 자율성, 비판적 사고와 같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 소양이다. 이를 가르치기 위해 교사가 일방적으로 강의를 하기보다는 학생들의 질문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조기교육이나 사교육은 거의 없다. 닐센 장관은 “스스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혁신과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 수 있다”며 “암기 능력을 시험하기보다는 문제를 주고 이를 해결해가는 과정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덴마크도 한국만큼 교육을 강조하지만 교육에 대한 인식과 다양성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닐센 장관은 지적했다. 대학 교육의 경우 한국에서는 4년제 대학 중심이지만 덴마크는 그 범위가 넓다. 한국 대학과 비슷한 5년제 대학(3년 학사, 2년 석사)엔 전체 고등학생의 29%만이 진학한다. 3~4년제 전문대학에서 간호학, 교육 등을 전공하거나 2년제 단기대학에 입학해 전문 기술을 배우는 학생도 많다.

대학에 가는 고등학생은 전체의 62% 정도다. 나머지는 바로 직업현장으로 나간다.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일을 시작해도 사회적 지위나 보수가 낮지 않다.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기술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 공무원보다 임금이 높고 존경을 받는다고 닐센 장관은 말했다. 그는 “덴마크에선 기술을 배우거나 현장에서 일하는 것도 다른 형태의 교육이라 여기고 대학 교육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덴마크에서 혁신적인 기업이 많이 나오는 것은 다양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게 진로를 결정하는 것을 돕기 위해 카운셀링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전문 상담사를 지역·학교별로 배치하고 학생들에게 진로 상담을 필수적으로 받도록 했다. 한번 진로를 정했다고 해서 다시 바꿀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닐센 장관은 “덴마크에선 일반계 고등학교 외에도 상업고, 전문기술고 등이 있다”며 “상업고에 진학했더라도 학생이 원하면 일정 기간의 교육을 거쳐 대학에 갈 수 있게 돕는다”고 전했다.

직업을 선택한 뒤에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일하다가 학교로 돌아와 전문 기술이나 이론을 배울 수 있다. 다른 분야로 진출하고 싶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닐센 장관은 “덴마크 교육은 평생 진행되고, 언제든 진로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특징이 있다”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은 것도 이런 재교육 시스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보다 완벽한 교육제도를 만들기 위한 논의도 계속하고 있다. 2년 전엔 초등학교 제도를 개편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교사뿐 아니라 교육학 전문가도 학교에 배치해 교육의 전문성을 높였다. 대학 교육을 개편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닐센 장관은 “인문학 전공자가 많고 단기 대학에 가는 학생이 적어 노동시장의 미스매치가 심화되고 있다”며 “인문학 전공자를 제한하는 등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