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석유화학업계는 최악의 한 해를 보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국제유가 급락이 맞물리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SK케미칼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김철 SK케미칼 사장(54·사진)의 표정은 어둡지 않다.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굵직한 두 건의 프로젝트가 있어서다. 이 회사가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폴리페닐렌설파이드(PPS) 소재와 세포배양 백신이 주인공이다. 김 사장은 “아직 사업 초기 단계여서 하반기 들어서야 성과가 가시화되겠지만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사업들이어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손꼽히는 글로벌 사업통이다.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의 원유개발 사업이 안착하도록 힘을 보탰고 그룹의 글로벌 사업 밑그림도 그렸다. 2013년 1월 수지사업본부장을 맡아 SK케미칼에 합류한 뒤 위기 돌파 해법을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맞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1년 만에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해 석유화학 사업부문을 총괄하고 있는 김 사장은 기존 사업 고도화와 신규 사업 안착을 최우선 과제로 챙기고 있다.

▷올해 사업 전망은 어떻습니까.

“글로벌 경기침체와 국제유가 변동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 때문에 올해도 석유화학업계에는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입니다. 지난해에 비하면 ‘소폭’ 성장이 이뤄지겠지만 수치 자체로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다만 SK케미칼은 자세히 내용을 들여다보면 희망을 가질 만합니다. 수년간 준비해온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가시적 성과를 이뤄내는 출발점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인 PPS 소재와 세포배양 백신은 하반기부터 성과를 낼 수 있을 겁니다. 대표적인 미래 먹거리 사업이 본격화되는 만큼 올해는 회사가 재도약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최근 10여년 동안 변신을 거듭했습니다.

“SK케미칼은 과거 원사와 원면을 생산하던 섬유회사였어요. 지금은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전혀 다른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1978년 개발한 페트병 소재가 주력사업이었는데 지금은 에코젠, 스카이그린 등 친환경 소재와 고기능성 소재가 주력 사업이 됐어요. 중국 등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따돌리고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창조와 혁신을 해온 결과입니다. 에코젠, 스카이그린 등 주력 제품은 고도의 기술력이 요구되는 고부가가치 소재입니다. 세계에서 SK케미칼과 미국 이스트먼케미컬 두 곳에서만 양산하고 있습니다.”

▷친환경 사업에 힘을 쏟는 이유는.

“SK케미칼은 국내 석유화학업계에서 가장 차별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바이오 물질을 섞어 만든 플라스틱부터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바이오디젤에 이르기까지 사업분야가 다양한데 공통점은 ‘친환경을 추구하고 있다’는 거예요. 인류와 환경에 기여하는 화학제품을 개발한다는 회사 비전에 따라 친환경 소재와 에너지 분야에 회사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습니다. 친환경 화학소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합니다. 최근 선진국을 중심으로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친환경 화학소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관련시장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바이오 화학 시장은 2010년 1300억달러 규모였으나 2025년에는 4830억달러로 급팽창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옵니다. 친환경 사업이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과 가치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성과는 어떤가요.

“SK케미칼 제품은 벌써 소비자들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투명 소재의 칫솔이나 프리미엄 화장품 용기, 식품용기에는 우리 회사가 직접 개발한 친환경 소재인 에코젠이나 스카이그린 등이 쓰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식판이나 신용카드 소재로도 쓰이는 등 활용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습니다. 친환경 소재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친환경 소재로 제품을 만들려는 제조사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긍정적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제품의 대부분은 석유에서 나오는 소재로 만들어지는데 앞으로는 친환경 소재로 빠르게 대체될 거예요. SK케미칼이 개발한 바이오 플라스틱 에코젠, 생분해성 바이오 소재 폴리라틱산(PLA) 등은 국내외 친환경 소재 시장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제품입니다.”

▷PPS 사업 전망은 어떻습니까.

“PPS는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높은 열과 충격을 견딜 수 있어 금속을 대체하는 소재로 시장 수요가 커지고 있습니다. 올 하반기에는 일본 데이진과 합작한 PPS 공장이 제품 생산을 시작할 예정이에요. 현재 데이진과 함께 사전 마케팅도 하고 있고 자동차, 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과 다수의 부품·소재 개발 프로젝트도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엔 글로벌 화학업체 에이슐만과 사전 공급계약을 체결했을 정도로 업계에서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어요. PPS는 미래 먹거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국내 화학업계에선 아직 생소한 고부가가치 프리미엄 플라스틱 분야인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시장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사명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PPS 양산 기술이 기존 글로벌 기업들과 차별화된다는 점에서도 기대가 커요. 세계 최초로 PPS 공정에 솔벤트 같은 유해물질을 사용하지 않아 친환경 제품으로도 경쟁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제약도 지난해 좋은 성과를 거뒀는데요.

“백신 사업에서 지난해 성과가 많았습니다. 리스크를 감수하고 대규모 투자를 했던 사업이라 더욱 뜻깊다는 생각입니다. 국내 최초이자 세계 세 번째로 세포배양 방식을 활용한 독감 백신의 판매 허가를 얻은 것이 가장 큰 성과였습니다. 기존 유정란 백신과 달리 외부 오염에 노출되지 않고 항생제나 보존제 등을 사용하지 않아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제품입니다. 신종플루 같은 국가적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2개월 안에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졌고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외부 오염에도 영향을 받지 않게 됐습니다. 세계 최대 백신업체인 사노피 파스퇴르와 손잡고 차세대 폐렴 백신 공동 개발 및 수출 계약을 맺은 것도 성과로 꼽을 수 있습니다. 500억원의 기술료를 지급받는 등 백신기술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 창립자인 빌 게이츠가 설립한 빌앤드멜린다게이츠재단으로부터 490만달러를 지원받아 국제백신연구소와 함께 저개발국 아동을 위한 장티푸스 백신 개발도 진행 중입니다.”

▷중장기 비전은 무엇입니까.

“2020년까지 매출 2조6000억원, 영업이익 2600억원을 목표로 잡고 있습니다. 비스페놀A 등 환경호르몬을 유발하는 물질에 대한 규제가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어 생분해성 소재, 바이오 플라스틱 같은 친환경 소재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각국의 연비규제 강화로 자동차 경량화 소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어 PPS 사업 전망도 밝습니다. 혈액제 등 제약사업 투자도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입니다. 올해는 네 개 바이러스를 동시에 예방하는 백신을 세포배양 방식을 이용해 세계 최초로 제품화하는 것이 목표예요. 또 폐렴 백신, 대상포진 등의 프리미엄 백신도 계획대로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글로벌 친환경 소재와 헬스케어 시장을 주도하는 선도기업으로 도약해나갈 것입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