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회사 임직원들이 평가 대상 기업과 신용등급을 미리 조율한 뒤 평가계약을 맺는 이른바 ‘등급 장사’를 해온 혐의로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신평사와 기업 간 ‘검은 커넥션’이 적발돼 처벌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본지 2014년 6월18일자 A1, 3면 참조

금융감독원은 29일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를 열고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3대 신평사에 대한 제재안을 의결했다. 임직원에 대해선 혐의의 경중에 따라 중징계 또는 경징계를, 기관에 대해선 경징계 처분을 내렸다. 업계에선 국내 신용평가 시장이 3사 과점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만큼 영업정지 등 중징계 처분을 내릴 경우 채권시장에 큰 혼란이 올 것을 우려해 금감원이 경징계 처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 채권을 발행하려는 기업은 신평사 3곳 중 2곳으로부터 신용등급을 받아야 한다.

이번 제재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한 신평사는 국내 모기업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계획이었지만 “조만간 회사가 지급보증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 계획이 있으니 도와달라”는 발행사 측 요청을 받고 ABCP 발행 이후로 등급 조정을 늦췄다. 이에 따라 발행사는 낮은 금리에 자금을 조달했지만, 해당 ABCP를 산 투자자는 이후 신용등급 하락으로 손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3대 신평사들이 “좋은 등급을 줄 테니 신용평가 업무를 맡겨달라”고 기업에 제안한 사실도 드러났다. 반대로 기업이 “가장 높은 등급을 주는 회사와 계약을 맺겠다”며 ‘등급 쇼핑’에 나설 때도 신평사들이 예상 신용등급을 알려준 것으로 나타났다. 신평사가 예상 신용등급을 알려주고 계약을 따내는 것은 자본시장법이 엄격히 금지하는 사안이다.

금감원은 사기성 회사채와 기업어음(CP) 발행 등으로 다수의 피해자가 나온 동양사태가 발생한 직후인 2013년 말부터 3대 신평사에 대해 특별검사를 벌여 작년 6월 중징계 방침을 통보했다.

금융위도 금감원 조사를 계기로 자본시장연구원에 ‘신용평가제도 개선방안’ 용역을 의뢰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섰다. 높은 신용등급을 받아야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기업과, 이 기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평가업무를 수주하려는 신평사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 같은 문제가 비롯된 것으로 금융당국은 보고 있다.

오상헌/하헌형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