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구조개혁도 경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우리 경제 성장률이 4년 만에 세계 성장률을 앞지른 것으로 추정된다며 자랑했다. 언제부터 세계 성장률이 우리가 잘하고 못하고의 기준이 됐는지. 올해 성장률 역시 세계 성장률보다 높을지 낮을지가 관심일 뿐이다. 정부가 눈높이를 평균치로 잡으면 구조개혁도 그 수준을 못 벗어날 공산이 크다.

규제도 ‘킹핀’이 있다

구조개혁의 ‘킹핀(kingpin)’은 규제개혁이라지만 규제에도 엄연히 킹핀이 있다. 국토교통부가 새해 업무계획에서 비도시지역 공장입지 제한 완화 등 규제개혁의 속도를 높이겠다고 했다. 하지만 핵심은 투자도, 일자리도 다 옥죄고 있다는 수도권 규제다. 대통령의 수도권 규제완화 언급에 국토부는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게 안 되면 정부는 쉬운 규제만 건드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수도권 규제를 풀어 해외로 떠난 기업을 유치하느라 혈안이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이들 나라에 지고 들어간다. 벌써부터 지방자치단체, 정치권 등에서 수도권 규제완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가 이를 돌파할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농림축산식품부도 농업의 6차산업화니, 첨단화·규모화니 떠들었지만 여기서도 핵심을 비켜갔다. 바로 대기업 등 비농업분야 경영과 자본의 농업 참여문제다.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그동안 농민과의 상생을 조건으로 한 번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이다. 농민의 눈치를 보며 몸을 사리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중국, 일본만 해도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농업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만 오로지 농민들의 리그를 고집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아예 후퇴하는 중이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은 이 분야 규제의 킹핀이라고 할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에 대해 2013년 말 이미 선을 그어버렸다. “전혀 계획이 없다”고. 대신 의료법인 자회사 설립,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영리법인 도입 등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이마저 제대로 안 되고 있다. 더구나 원격진료는 올해도 시범사업 확대가 전부다. 웬만한 나라들은 다 한다는 영리법인, 원격진료다. 이래놓고 무슨 미래성장동력 운운하는지.

대통령은 지난해 3000건의 규제를 개선했다고 했다. 그러나 쉬운 규제개혁만 하면 다른 나라와 경쟁이 안 된다. 공공, 노동, 금융, 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주요 20개국(G20) 성장전략 중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 1위로 평가받았다고 자랑했지만 그러면 뭐하나.

평균인가, 점프인가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청 등 소위 진흥 부처들이 쏟아낸 올해 업무보고 역시 당장 보여줄 수 있는, 쉬운 것만 잔뜩 모았다는 인상이다. 미래부는 아예 ‘오늘부’가 되기로 작심한 듯했다. 업무계획이 산업부, 중기청 등과 구분이 안 갈 정도다. 위기의 정보통신기술(ICT) 대책도 곧 내놓는다고 한다. 아니 지금까지 그렇게 쏟아낸 ICT 대책들이 왜 소용이 없었는지 그것부터 알아야 하지 않겠나.

정부는 3년을 바꿔 30년의 성과를 내자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30년의 성과를 낼 어려운 건 요리조리 피해 가는 양상이다. 구조개혁은 다른 나라도 한다. 남들 다하는 쉬운 것만 하면 기껏해야 평균이다. 결국 점프를 하려면 누가 더 힘든 개혁을 먼저 하느냐에 달렸다. 우리는 그 게임에서 벌써 경쟁국에 밀리고 있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