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준비 중이던 건강보험 개편안은 사실 (세금으로 따지면) 증세가 아니라 감세였습니다.”

지난 28일 건보 개편안 발표를 접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뒤늦은 해명은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프레임이 초래한 웃지 못할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개편안은 근로소득 외 금융·임대소득 등이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 고소득 45만가구에 건보료를 더 물리고, ‘송파동 세 모녀’와 같은 저소득층 등 602만가구의 건보료 부담을 줄여주자는 게 핵심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 연말정산 파동에 이은 ‘또 다른 증세’로 비칠까 두려워 급제동을 걸었다.

개편안대로라면 건보료 수입이 1조원 정도 줄어든다. 문 장관은 “하지만 그동안 무임승차해온 사람들 사이에선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복지부가 아무리 증세가 아니라고 얘기해도 정치권에서 문제가 되면 정부는 소극적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 장관의 이 같은 탄식은 박근혜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 틀에 갇혀 점차 ‘식물정부’로 변해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공약한 대로 복지를 확대하자면 이를 뒷받침할 재원이 필요하지만 증세의 ‘증’자도 꺼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상복지를 축소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스텝은 갈수록 꼬여가고 있다. 무임승차를 막아야 할 건강보험 개혁은 무기한 연기되고 지난 수년간 복지 재원 분담을 둘러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은 올해도 해소될 가능성이 없다. 세수 부족으로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지출 여력도 예전 같지 않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국회와 포퓰리즘적 여론에 밀린 정부가 주요 개혁 과제나 재정 현안 처리에 잇달아 실패함으로써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 훼손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임기를 절반도 돌지 않은 박근혜 정부가 국정 운영의 동력을 급속도로 상실하고 있다.

김홍열/고은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