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시아의 고액 자산가들이 회사채와 달러화 등 미국 자산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돈 풀기(양적 완화)와 미국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맞물리면서 달러화 강세가 두드러지자 투자 매력이 높아진 미국 자산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강(强)달러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더 떨어뜨려 경제 성장을 꾀하는 국가 간 ‘통화 전쟁’이 올 들어 격화하는 추세라 발 빠른 고액 자산가들이 미국 자산으로 피신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美 회사채에 몰리는 유럽 투자자

美 자산만 쓸어담는 亞·유럽 거부들
3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주 유럽 아이셰어 달러 표시 회사채 상장지수펀드(ETF)에 3억4700만달러(약 3800억원)가 유입됐다. 전주 6800만달러와 비교하면 한 주 동안에만 다섯 배를 웃도는 투자 자금이 몰렸다. 지난주 유럽 회사채 관련 최대 규모 ETF에 유입된 자금이 1억3100만달러라는 점을 감안해도 투자 자금 유입 속도가 가파르다. 투자등급의 미국 회사채에만 투자하는 아이셰어 ETF에는 올해 들어서만 4억3580만달러가 들어왔다.

전문가들은 지난 22일 ECB의 대규모 양적 완화 결정을 전후해 유럽의 채권 금리가 빠르게 떨어지면서 유럽 투자자들이 미국 채권시장으로 눈길을 돌렸다고 분석했다. 유럽의 대부분 국채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26일에는 유럽의 투자등급 회사채 평균 금리가 사상 처음으로 연 1%를 밑돌았다. 미 채권의 절대 금리는 유럽보다 높은 데다 연내 기준금리 인상까지 예측되고 있어 투자 매력이 높아진 상황이다.

에만 모스코비트 ING인베스트먼트 자산관리자는 “가뜩이나 채권 금리가 바닥에 떨어진 상태에서 ECB의 대규모 양적 완화까지 겹쳐 유럽 투자자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美 달러화에 매료된 아시아 투자자

아시아도 마찬가지다. 특히 고액 자산가들의 달러화 선호 현상이 두드러진다. 캐나다와 인도 등 주요 국가들이 앞다퉈 기준금리를 내리는 등 통화정책을 완화하면서 요동치고 있는 외환시장에 불안을 느낀 데다 안전자산으로서 달러화 매력이 계속 높아진 결과다.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으로 달러화 가치 상승 추세가 단기간에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깔려 있다.

2억달러를 운용하는 싱가포르의 스탬퍼드매니지먼트는 전체 자산의 90% 이상을 달러화에 투자하고 있다. 스탬퍼드매니지먼트는 자산 규모 100만달러 이상의 고객만 관리한다.

제이슨 왕 스탬퍼드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는 “달러화에 투자하려는 수요가 계속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슈퍼리치’만 고객으로 삼는 샌드에어와우드사이드 역시 전체 자산에서 달러화 투자 비중이 내부 규정에서 허용하는 상한에 이른 상태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달러화 가치 상승에 베팅하는 헤지펀드의 거래 규모가 사상 최대인 44만8675건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투자 전문매체 마켓워치는 이 같은 흐름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날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종전 연 17%에서 연 15%로 2%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최근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률 추세가 약화된 데다 경기가 급속하게 냉각된 점을 고려한 조치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