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우리도 다 먹어치우고 있지 않나
“우리가 함께 다 먹어 치우지 않았나.”

2011년 5월 그리스 부총리였던 테오도로스 팡갈로스는 아테네 신타그마광장에서 “유동성이 넘치던 2000년대 초중반 해외에서 끌어들인 돈은 어디로 갔느냐”는 젊은이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과거 포퓰리즘(대중 인기 영합주의)과 유권자의 지지를 맞바꿨던 그리스 정치권은 국가를 재정위기로 내몰고 그 책임을 ‘함께 먹어 치운’ 국민들에게 돌렸다.

같은 해 한국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무상보육 추진에 여념이 없었다. “현재의 국가재정으로는 뒷받침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난색을 표했지만 정치권은 “무상보육은 시대적 흐름으로 대세를 누구도 거역하지 못한다”(손학규 민주당 대표)고 밀어붙였다. 한국경제신문이 당시 국회 속기록을 분석해 지난달 27일 보도한 내용이다.

1981년 사회당 집권 이후 갖가지 복지정책을 쏟아냈던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는 “유럽 선진국들과 비교해 뒤떨어진 복지수준을 끌어올려야 그리스 국민들의 삶의 질이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이후 그리스의 신민당과 사회당은 정권을 바꿔가며 더 많은 복지에 열을 올렸다.

오늘 시행하는 복지정책으로 표를 얻고 그에 따른 책임은 다음 세대로 돌렸다. 결국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43%에 이른 2009년, 재정위기가 닥치고서야 양당의 복지 경쟁이 끝났다. 그리고 지난달 25일 시리자(급진좌파연합)의 총선 승리로 41년간 정권을 주고받았던 신민당과 사회당의 양당 체제도 무너졌다. 중도좌파의 표가 대거 시리자로 넘어가며 2009년 의회에서 160석을 차지했던 ‘원조 복지’ 사회당은 13석의 군소 정당으로 몰락했다.

무책임한 복지 남발에 따른 대가는 언젠가 반드시 치르게 된다. 국가와 사회는 물론 해당 정책을 주도한 정치세력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스의 사례는 잘 보여준다. 재정위기 당시 그리스 총리는 파판드레우 전 총리의 아들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였다. 지금 만드는 복지정책이 다음 세대 정치인들에게 큰 짐을 지우는 것은 아닐까. 한국 정치권도 고민해봐야 한다.

노경목 국제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