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의 데스크 시각] 임종인 안보특보가 해야 할 일
국내 1세대 소프트웨어 전문가인 백일승 더하기북스 대표가 박근혜 후보 캠프와 문재인 후보 캠프의 문을 차례로 두드린 건 대통령 선거 열기가 달아오르던 2012년 10월이었다. 자신이 30년 이상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느낀 시급한 과제를 공약으로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건의한 공약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10만명 양성안’. 병역특례로 10만명을 키우고 이 중 일부를 사이버 전쟁에 대비한 ‘화이트 해커’로 활용하자는 안이었다. 그러나 두 캠프 모두 시큰둥했다. 경제민주화와 무상복지에 몰두하던 두 캠프가 표가 될지 불확실한 공약에 귀 기울일 리 없었다.

후진국 수준 韓 사이버 안보

그로부터 2년 뒤 백 대표가 걱정했던 사태가 터졌다. 작년 말 한국수력원자력이 해킹당해 원자력발전소의 일부 도면이 유출됐다. 원전 해킹 사건 직후 만난 백 대표는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의 허술한 사이버 보안 수준을 드러낸 사건이다. 정부가 사이버 보안 인력 양성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도…”라며 안타까워했다.

IT업계에서도 원전 해킹이 발생했을 때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었다. 보안 인력이 태부족인 현실에서 예견됐던 사고라고 입을 모았다. 보안 인력 부족은 구조적 문제다. 정부가 사이버 보안에 무관심하다 보니 공공기관이나 기업도 투자를 하지 않았다. 투자를 안 하니 보안 쪽에 좋은 일자리가 없다. 당연히 우수한 인재가 안 간다.

부족한 보안인력은 안보에 위협이다. 미국은 사이버 전쟁을 총괄하는 사이버사령부에 6000여명의 정예 병력을 배치하고, 사이버 작전 예산으로 연간 50억달러(약 5조5000억원)를 쏟아붓는다. 사이버 정예 병력은 다름 아닌 화이트 해커다. 뛰어난 해킹 실력으로 사이버 테러를 막는 화이트 해커는 미국에 8만여명, 중국엔 30만여명이 있다. 북한에도 1만2000여명이 있다고 한다. 한국은 고작 250명 정도로 추정된다. 병력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다.

사이버 보안 인력부터 키워야

세계 각국은 이미 사이버 전쟁 중이다. 북한이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인터뷰’의 제작사인 소니픽처스를 해킹하자 미국이 즉각 북한의 주요 사이트를 완전 마비시켰던 게 대표적 사례다. 이슬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각국에서 테러 요원을 모집하고 있다. 이제 전통적 개념으로 안보에 접근해선 안된다.

사이버 보안 인력 양성은 안보뿐 아니라 경제에도 득이 된다. 이스라엘의 엘리트 군인 양성 프로그램인 탈피오트가 그런 경우다. 이 나라는 매년 고교 이과 졸업생 중 50명을 엄선해 명문 히브리대에서 3년간 교육한 뒤 6년간 해커부대 등에서 복무시킨다. 이들은 군을 제대하면 자유롭게 창업 전선에 나선다. 세계적인 사이버 보안 기술 벤처기업이 유독 이스라엘에 몰려 있는 배경이다.

청와대가 최근 인사에서 사이버 보안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임종인 고려대 교수를 안보특보로 임명했다. 국가 안보의 최종 컨트롤타워이면서도 사이버 보안 담당 비서관조차 없던 청와대가 늦게나마 잘한 일이다. 그러나 특보 임명으로 끝이 아니다. 그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특히 화이트 해커 등 사이버 보안 전문 인력 양성에 힘 쏟게 하기 바란다. 임 특보는 지금이라도 컴퓨터 프로그래머 10만명 양성안을 다시 찾아보길 권한다.

차병석 IT과학부장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