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3심 사건을 나눠 담당할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악재가 잇따르며 도입 여부가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당초 대법원은 올해 관련 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게 목표였지만 국회에서는 도입 신중론이 나오고 있다.
잇단 악재…大法 상고법원 도입 '시계 제로'
대법원은 3심에 올라온 사건에 대해 재판 당사자가 아닌 제3자(참고인)가 법원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는 ‘민·형사소송 대법원 규칙 개정안’을 공포했다고 1일 발표했다. 지금까지 상고심에서는 공개변론을 할 때만 참고인이 의견을 낼 수 있었다. 대법원은 “미국 연방대법원이 시행 중인 ‘법정조언자 제도’를 우리 실정에 맞게 도입한 것”이라며 “사회의 다양하고 전문적인 의견을 충분히 들은 뒤 심리·판단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법정조언자 제도 도입을 들고나온 것은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을 일정 부분 수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9월 상고법원 관련 공청회에서 이 제도 도입을 처음 공론화했다. 최근에는 상고법원 도입의 전제조건으로 ‘하급심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1심 단독재판부에 부장판사급 법관을 배치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사실심 충실화 마스터플랜’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대법원의 행보를 두고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사법부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대법관 후보로 검찰 출신인 박상옥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을 임명 제청한 것도 대법관 구성 다양화를 요구하는 여론을 의식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한 중견 변호사는 “최근 대법원을 보면 상고법원 도입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데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이런 노력과 달리 최근 들어 예상치 못한 악재가 잇따라 터지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 여론이 더 나빠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에는 현직 판사가 사채업자에게 뇌물을 받았다가 구속기소됐다. 당초 대법원은 “근거 없는 의혹 제기”라며 당사자를 감쌌다가 기소된 뒤에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고 입장을 바꿔 ‘제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받았다. 여중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중년 남성 사건에서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을 두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는 등 대법원 판결에 대한 비판 여론도 최근 들어 빈번하게 일었다.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하는 하창우 변호사가 대한변호사협회장에 당선된 것도 대법원으로선 부담이다. 하 당선자는 “상고법원 도입은 대법관의 기득권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대한변협이 지난해 12월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1572명 중 809명(51%)이 ‘상고법원보다 대법관 증원이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현재 국회에는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법원조직법 개정안 등이 계류돼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를 처리해야 하지만 소속 국회의원 16명 가운데 상고법원 도입에 확실히 찬성하는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 대법원 관계자는 “2월 임시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해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게 목표였지만 일정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