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형벌의 진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밀라노 귀족가문 출신의 체사레 베카리아(1738~1794)는 경제분석에 처음으로 수학을 이용한 저술가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경제학자보다 형법학자로 더 확실한 역사적 위치를 점한다. 26세의 베카리아가 펴낸 ‘범죄와 형벌’은 국가적 형벌시스템에서 근대 이전과 근대를 나누는 저작으로 꼽힌다.
이 책은 전통의 종교로부터 세속법률 체계를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회계약에 포함되지 않은 형벌은 부당한 것이고,형벌은 입법자에 의해 법률로 규정돼야 한다는 원리를 설파한 저술이었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매우 쳐라!’ 이 땅에서는 어쩌면 이 두 마디면 족했을 원님재판이 횡행하던 시절, 그는 주관적 형법이 아닌 객관적 형법 사상을 확립했다. 서구의 이런 자유주의적, 인도주의적 형법 이론이 없었다면 근대는 없었거나 한참 늦었을 것이다. 사회계약설에 의한 국가형벌권, 죄형법정주의 같은 주요 법원리가 250년 전 베카리아의 책에 가닿는다.
형벌의 진화는 인권 확립의 역사이기도 했다. 신체의 자유도 부당한 체포, 잔학한 고문 같은 국가형벌권의 남용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인신의 자유는 그래서 사유재산권과 더불어 근대화 내지는 현대화, 문명 사회를 가능케 한 두 기둥이었다.
공동체나 특정 조직의 이름으로 단행된 징벌에는 무자비하고 극악무도한 게 너무나 많았다. 과거엔 국가의 형벌 또한 다르지 않았다. 유럽의 고성과 왕궁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돋게 하는 갖가지 고문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현대 국가처럼 범법자에 대한 격리나 교화 차원의 징역형이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때리는 태형은 기본이고 고문의 종류도 많았다. 사형방식도 잔혹했다. 근대 국가에서는 모두 사라진 역사요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스토리다. 그게 바로 근대의 성취요, 인류의 진보였던 것이다.
이슬람교 왕정 국가인 사우디가 정부에 비판적인 블로그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31세 자국 네티즌에게 태형 1000대형을 내려 비판을 받고 있다. 20주에 걸쳐 매주 50대씩의 채찍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다. 1차 50대가 집행되자 영국 캐나다 등지에서 규탄 집회가 잇따랐다. 왕국의 신민과 공화국 시민의 사람값 차이다.
이번엔 일본의 언론인이 희생됐다. IS의 참수는 더욱 비인간적, 반인륜적 잔혹 행위다. 이슬람 신정 국가를 세우겠다는 이 세력은 ‘처형’했다며 피 흘리는 동영상까지 돌려댄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저 잔혹한 범죄행위는 어떻게 징벌해야 하나. 고토 겐지의 명복을 빈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이 책은 전통의 종교로부터 세속법률 체계를 해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회계약에 포함되지 않은 형벌은 부당한 것이고,형벌은 입법자에 의해 법률로 규정돼야 한다는 원리를 설파한 저술이었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매우 쳐라!’ 이 땅에서는 어쩌면 이 두 마디면 족했을 원님재판이 횡행하던 시절, 그는 주관적 형법이 아닌 객관적 형법 사상을 확립했다. 서구의 이런 자유주의적, 인도주의적 형법 이론이 없었다면 근대는 없었거나 한참 늦었을 것이다. 사회계약설에 의한 국가형벌권, 죄형법정주의 같은 주요 법원리가 250년 전 베카리아의 책에 가닿는다.
형벌의 진화는 인권 확립의 역사이기도 했다. 신체의 자유도 부당한 체포, 잔학한 고문 같은 국가형벌권의 남용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다. 인신의 자유는 그래서 사유재산권과 더불어 근대화 내지는 현대화, 문명 사회를 가능케 한 두 기둥이었다.
공동체나 특정 조직의 이름으로 단행된 징벌에는 무자비하고 극악무도한 게 너무나 많았다. 과거엔 국가의 형벌 또한 다르지 않았다. 유럽의 고성과 왕궁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 돋게 하는 갖가지 고문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현대 국가처럼 범법자에 대한 격리나 교화 차원의 징역형이 아니었다. 죽을 때까지 때리는 태형은 기본이고 고문의 종류도 많았다. 사형방식도 잔혹했다. 근대 국가에서는 모두 사라진 역사요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스토리다. 그게 바로 근대의 성취요, 인류의 진보였던 것이다.
이슬람교 왕정 국가인 사우디가 정부에 비판적인 블로그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31세 자국 네티즌에게 태형 1000대형을 내려 비판을 받고 있다. 20주에 걸쳐 매주 50대씩의 채찍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다. 1차 50대가 집행되자 영국 캐나다 등지에서 규탄 집회가 잇따랐다. 왕국의 신민과 공화국 시민의 사람값 차이다.
이번엔 일본의 언론인이 희생됐다. IS의 참수는 더욱 비인간적, 반인륜적 잔혹 행위다. 이슬람 신정 국가를 세우겠다는 이 세력은 ‘처형’했다며 피 흘리는 동영상까지 돌려댄다.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저 잔혹한 범죄행위는 어떻게 징벌해야 하나. 고토 겐지의 명복을 빈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