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 규제’와 함께 문제가 되는 건 ‘불용(不用) 규제’다. 법·규제가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을 담고 있어 지키는 사람이 없거나 준수하기 힘든 규제들이다. 이런 규제들이 준법정신을 흐리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국민과 기업의 위법과 탈법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과자 쏟아내는 '과잉규제'] 현실과 동떨어진 '좀비규제'도 수두룩
대표적인 게 ‘택배 차량 증차제한’ 규제다. 국내 택배 물동량은 2008년 10억상자에서 2013년 15억상자, 지난해 16억상자가량으로 급증했다. 해외 직접구매, 온라인쇼핑이 확산된 결과다. 그런데 택배 회사들은 물동량이 늘어나도 택배운송 차량을 마음대로 늘릴 수 없다. 정부가 공급과잉을 막는다는 이유로 2004년부터 택배 차량 증차를 엄격히 제한해서다.

정부는 10년간 1만5000여대로 묶어둔 택배 차량을 물동량 증가에 맞춰 2013년 1만1200대 더 늘려줬지만 여전히 현장에선 택배 차량 부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당수 업체가 무허가 차량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작년 기준 무허가 택배 차량은 1만4500여대에 달한다. 택배업체 A사 관계자는 “무허가 차량을 쓰다 걸리면 70만~8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는 등 위험부담이 크지만 어쩔 수 없다”며 “정부가 뒤늦게 무허가 차량 중 1만2000대를 허가 차량으로 전환해 주겠다고 하지만, 여전히 현장 실정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폐휴대폰 재활용 의무’ 규제도 마찬가지다. 환경부는 매년 통신회사와 휴대폰제조 업체에 일정량의 폐휴대폰을 수거하도록 하고 있다. 자원 재활용을 위해서다. 2013년 기준 통신회사는 343t, 삼성전자 LG전자 등 휴대폰 제조업체는 492t을 할당받았다.

그런데 수거 실적은 저조하다. 국내 판매량의 20%가량이 중고폰으로 해외에 수출되기 때문이다. 2013년 의무할당량 기준 폐휴대폰 수거율은 60% 남짓. 휴대폰 제조업체는 수거하지 못한 물량에 해당하는 2억6000만원을 벌금으로 냈다.

‘불용규제’는 더 있다. 식품위생법은 ‘식품 제조과정에서 배합비가 달라지면 신제품으로 분류해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막걸리 등 전통주의 경우 발효 정도에 따라 알코올과 정제수 배합비가 천차만별이라는 데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막걸리 한 병을 만들 때마다 신제품으로 신고해야 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다.

실생활에서도 있으나 마나 한 규제들이 많다.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 조례에는 ‘공회전 제한 조례’라는 게 있다. 자동차를 5분 이상 공회전할 경우 과태료 5만원을 부과한다는 내용이다. 매년 이벤트처럼 계도활동을 벌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를 어겨 과태료를 물거나, 적발하는 일은 드물다.

또 음악산업진흥법은 ‘노래방 출입문의 절반가량을 투명유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정해놨다. 건전한 풍속을 해치는 행위를 미리 방지하자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대다수 노래방은 이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정기적으로 준수율을 파악해 규제를 없애거나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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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명/심성미/강진규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