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비슷한 변론 늘어진 '땅콩회항' 법정
“중복된 내용은 빼고 말해주세요.” 지난 2일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땅콩 회항’ 사건 결심공판에서 재판부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측 공동 변호인의 최후변론에 앞서 이같이 말했다. 비슷한 내용의 변론이 결심공판 내내 반복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날 결심공판은 오후 2시30분에 시작해 다음날인 3일 새벽 1시3분에 끝났다. 세 차례 휴정 시간을 제외하면 10시간에 걸친 마라톤 공판이었다. 결심공판이 이렇게 장시간 지속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결심공판은 검찰의 구형의견, 변호인의 최후변론, 피고인의 최후진술로 진행된다. 박창진 사무장이 출석하면서 증인신문이 길어져, 검찰 구형의견 진술은 오후 8시가 돼서야 시작됐다.

검찰이 준비한 파워포인트(PPT)는 100장이 넘었다. 검찰은 항로변경 관련 법령을 모두 읽어 내려갔고 구형을 하기까지 1시간30분이 걸렸다. 이후 진행된 변호인 최후변론에서 변호인이 “진술이 좀 길어질 것 같다”고 말하자 방청석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변호인 측은 주로 매뉴얼에 관련된 이야기를 이어갔다. 박 사무장이 ‘웰컴드링크(탑승 시 제공하는 음료)서비스’ 매뉴얼을 몰라 조 전 부사장이 화나게끔 했다는 주장이었다. 박 사무장 증인 신문 때부터 변호인과 공동변호인의 최후진술까지 반복된 얘기다. 방청석에선 계속되는 ‘승무원 매뉴얼 교육’에 한숨 소리가 더 커졌다. 검찰과 변호인단도 피곤한 듯 고개를 뒤로 젖히거나 진술 도중 화장실을 다녀오는 일이 잦았다.

긴 재판이었지만 방청석의 일반시민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앞선 공판 때부터 방청권 확보를 위한 일반시민들의 경쟁이 치열했고, 아이 손을 잡고 재판장에 나온 어머니도 있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내용을 봐야 알겠지만 검찰의 PPT 양이나 변호인 의견진술 시간 등을 보면 재판이 지나치게 늘어진 것 같다”고 했다. 관심이 집중된 사안이라서 그랬을까. 검찰과 변호인 측이 여론을 너무 의식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대목이다.

김태호 지식사회부 기자 highk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