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연말정산, 정말 억울한 사람들
연말정산 소동이 좀 잠잠해졌다. 정부가 사과하고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아서인지 성난 민심은 그런대로 수그러든 듯하다. ‘13월의 세금폭탄’ 등 자극적 용어를 써가며 대중의 분노를 부추기던 언론들도 한 발 떼는 분위기다. 이번 일이 커진 건 누구의 잘잘못은 둘째치고 많은 월급쟁이들이 ‘억울함’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억울한 사람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많이 환급받을수록 손해다

봉급생활자들은 무엇이 그렇게 억울했을까. 연말정산 결과 1년 전에 비해 ‘13월의 보너스’가 줄어든 사람들이 아마도 좀 있는 모양이다. 보너스는 고사하고 세금을 더 ‘토해내는’ 이들이 특히 억울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연말정산 환급액의 증감과 세금의 증감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건 이제 거의 상식이다. 매월 원천징수를 많이 하면 환급액이 많아지고 반대면 환급액은 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원천징수를 줄이는 간이세액표 개정은 2012년 9월에 있었고 그 효과는 1년 전 연말정산에서 주로 나타났다. 그러니 이번 연말정산에서 환급액이 줄었다면 주로 개인적 사정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이는 억울해 할 일은 아니다.

정말 억울한 것은 환급액보다 실제 내는 세금이 부당하게 많아졌을 때일 것이다. 2014년 귀속 소득에 대한 증세는 2013년 소득공제 중 상당수가 세액공제로 바뀌면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연봉 5500만원 이상에서 세부담이 늘어난다고 정부가 이미 밝힌 터였다. 세금이 늘어나니 좋아할 사람은 없겠지만 지금 와서 뒤늦게 억울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좀 어불성설이다.

사실 연말정산과 관련해 정말 억울한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연말정산 결과 많은 돈을 환급받는 사람이다. 이유는 이렇다. 과거 국세전산망이 구축되기 전, 봉급생활자들이 모든 공제를 다 챙기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연말정산 시스템을 잘 모르면 받을 수 있는 공제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고 알더라도 필요한 영수증과 서류를 일일이 챙기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제대로 챙기지 못해 ‘억울하게’ 환급 받지 못하는 액수가 적지 않았다.

추가 납부세액 분납은 이중혜택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국세청 연말정산간소화 서비스에 들어가면 웬만한 공제 내역이 다 나오고 예상 세액까지 계산해준다. 몰라서 억울하게 환급 받지 못하는 경우는 이제 거의 없다고 봐도 좋다. 대부분 내야 할 만큼만 세금을 낸다는 말이다. 그러니 어차피 낼 세금이라면 연말정산 후 많이 낼수록 근 1년간 이자만큼 유리하게 된다. 반면 ‘13월의 보너스’를 듬뿍 받는 사람은 국가에 약 1년간 무이자로 돈을 빌려줬다가 돌려받는 데 불과하다. 이제 누가 정말로 억울한지 좀 분명해졌다.

그런데 이번 연말정산 대란은 정작 억울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여당은 여기에 한술 더 떴다. 연말정산 후 추가 납부세액을 3개월간 분납할 수 있게 한 것이 그렇다. 이미 이자만큼 득을 본 이들에게 무이자 할부라는 이중 혜택까지 주겠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불공정하고 편파적 조치다. 그런데도 세상은 조용하다. 아니 이런 엉터리 대책이 나오자 비로소 여론이 잠잠해졌다. 실제 유불리에는 관심 없고 당장 눈앞의 돈만 빼앗아가지 않으면 된다는, 그런 국민에 그런 정부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